천안함 희생장병들의 영전 앞에 깊은 애도와 함께 마음 속의 국화 한 송이를 바칩니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할 새도 없이 찬 바다 위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한 그들의 영혼을 위해 천부경을 봉송합니다. 오늘 새벽 그들의 명복을 빌다가 최근 몇 년 동안 내게 많은 화두를 던진 죽음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폭발할 때, 나는 미국 엘에이에 있었습니다. 닷새 후에는 보스턴 MIT에서 1천여 명의 미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나의 강연회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미국의 모든 공항이 폐쇄되었고, 빨리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사이, 행사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주위에서는 위험하다고 말리는데, 약속을 취소하고 타협할까 망설여지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어, 48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전을 하여 보스턴에 도착했습니다. 차 안에서 두 번의 일출과 일몰을 맞으며, 그래도 인간이 희망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되뇌이던 기억이 납니다.

작년 늦 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의 마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그의 죽음은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그 나름의 철학에서 나온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보게, 담배 있나?" 죽음을 앞두고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쓸쓸한 한 마디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천암함 침몰의 원인을 그 누구도 속시원하게 밝히지 못했지만, 북한이 연루되어 있을 거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천암함 장병들이 산화한 백령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산하의 반쪽인 북한이 있습니다. 그 땅에서 굶주림으로 죽어갔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수백만 동포들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삼촌이나 조카들이 굶고 있는 듯 가슴이 저렸습니다.

내게 화두를 던져준 그 많은 죽음들에 대해 명상하면서 인간의 양심과 생명의 흐름을 가로막는 모든 인위적인 둑과 댐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46명의 희생장병들과 애끊는 가족들의 비탄, 국민의 절망과 충격 뒤에 무엇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의 염려와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 뒤에는 남북한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이 있습니다. 더 뒤에는 얽히고 설킨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인 기득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여러 권력 집단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에 의해 때로 수백, 수천의 생명이 희생을 당합니다.

역사의 이름 아래,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던 수많은 개인이 속절없이 스러져 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의문을 품어봅니다. 국가와 종교와 서로 다른 가치의 투쟁 속에서, 우리들 개인의 미래와 아시아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선량하고 순수한 대중들은 자신의 행복과 평화, 그리고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가? 모두가 희망을 품을 수 있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사회, 모든 인류가 원하는 그런 사회를 우리는 기대해도 되는가? 인류에게 과연 희망이 있는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우리의 생명과 양심이, 인간이 만든 구조나 제도라는 댐에 가로막혀,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생명을 향한 측은지심과 사랑이 기득권이나 권력이라는 장애에 가로막혀 썩어가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 이후에 국가안보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리가 잘 준비하여 북한보다 군사적 우위에 설 수도 있겠지요. 강대국의 위압 앞에서 기 죽지 않고, 당당하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관철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모든 가치 위에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먼저 놓는 그 마음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제 2, 제 3의 천안함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문제를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우리가 뽑은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맡깁니다.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최선의 선택을 해주기를 바라며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방관합니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의 삶은 대한민국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이 지구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내 삶의 전문가이듯이, 내가 이 나라와 지구의 주인이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는 자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것은 단지 정치적인 참여의식이 아니고, 생명의 위대한 권리요 책임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중요한 개인적, 집단적 선택의 순간에 무엇이 기준이 되게 할 것인가? 그 순간에 우리 모두가 "홍익"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과 집단의 이기주의 대신, 언제나 생명으로, 양심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심이 없는 성공이나 승리 대신, 양심과 진실의 편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진정성, 삶의 진정성 앞에 거짓과 가짜는 힘을 잃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각과 깨어남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자각과 깨달음이 파도처럼 일어나 생명 위에 군림하려는 모든 둑과 댐을 허물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희망은 빛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희망을 노래할 때입니다. 나의 희망, 내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희망, 그리고 인류의 희망을 노래할 때입니다. 백령도 앞바다에 뿌려진 꽃다운 젊은이들의 생명 위로, 우리 모두의 희망이 태양처럼 떠올랐으면 합니다.

잠자고 있던 우리의 양심을 깨워 큰 두레박으로 희망의 샘물을 함께 퍼올렸으면 합니다. 그 희망의 샘물을 정수리에서부터 쏟아부어 모든 절망과 슬픔을 씻어내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희망을, 인간의 희망을, 지구의 희망을 노래하였으면 합니다. 그것은 정녕 우리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또 한 분의 전직 대통령이 노래했던 것처럼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꽃다운 조국의 영혼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오늘 내게 화두를 던져 준 그 모든 생명이여, 편히 잠드소서.

홍익인간 이화세계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국학원 설립자 www.ilch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