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1일 국학원 초청으로 방문한 윤응렬 장군은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둘러보며  “단군을 신화로 만든 역사가 안타까웠는데 그 역사가 되살아나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6·25 당시 잠자리비행기로 107회나 출격했던 공군의 살아있는 역사, 윤응렬 장군(83세)이 국학원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방문했다.

윤 장군은 1943년 16세에 일본 규수 비행학교에 입학해 가미카제 특공대로 차출되었다가 해방을 맞아 극적으로 목숨을 구하고 1947년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와 북한군 공군 장교가 되었다. 공산 정권에 회의적이었던 그는 1948년 개펄을 따라 월남하여 육군사관학교를 6개월 만에 졸업함과 동시에 육군항공대(공군의 전신)에 배속되었다. 파란만장한 굴곡을 거쳐 6·25가 한창인 1952년 5월 100회 출격을 했던 그는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에서 목숨을 건 비행으로 작전을 성공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국학원 초청으로 방문한 윤 장군은 장영주 국학원장(직대)의 마중을 받은 후 짧은 국학강의와 국학원이 걸어온 길에 대한 브리핑을 청취했다. 해방 후 6·25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가 헤쳐 나온 역사를 담은 “사랑합니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란 동영상을 보고는 감격하여 눈물을 닦으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또한 국학원 전시관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둘러보며 홍익인간 철학과 천부경, 단군 역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윤 장군은 “중국 은나라 갑골문에 단군조선을 방문한 중국기록이 최근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서 신화로 조작된 단군 역사가 되살아나는 것이 기뻤는데 국학원이 이런 노력을 한 결과”라며 존경을 표하고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지금 같이 벅찬 감동을 받지 못했을 텐데. 죽기 전에 국학원에 온 것이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는 소감에 대해 “사람들이 벌써 6·25를 까맣게 잊고 있어 안타깝다. 한국전쟁은 그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국지적인 사건이 아니다.  당시 스탈린의 세계 공산화 계획의 일환으로 진행하던 유럽으로의 진출이 좌절되자 동북아시아로 힘을 집중하는 과정에 우리나라가 선택된 것이다. 한국전쟁은 지구상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비장하고 숭고한 이념과 신념의 전쟁이었음을 기억하고 재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중에 안 사실지지만 윤응렬 장군이 제10전투 비행단 단장으로 재직 시에 장준봉 전 국학원장이 부관으로 모셨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