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벌써 절반이 다 되었다. 나이라는 꼬리표의 숫자가 하루아침에 바뀐지도 벌써 벌써 반년이다. 이렇게 해가 바뀌면 원하건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나이란 것을 먹는다.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나이라는 숫자가 올라가는 것이 마냥 좋았었다. 나이를 더 먹기 위해 떡국을 몇 그릇이나 더 먹는다는 유머가 있는 것을 보면 필자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사춘기를 전후 하여 공통으로 느끼는 보편적인 생각이 아닐까? 그러나 세월이 더 흘러 법적인 성년의 나이가 지나고 오늘까지 10여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썩 좋은 기분만 드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은 만큼 '나잇값'을 해야 하는 부담감도 살짝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어린 날의 향수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요즘 사회는 점점 '젊고 어린 것'을 지향해 가고 있다. TV를 켜면 예전보다 가면 갈수록 아이돌스타라는 비교적 낮은 연령대의 스타들이 쏟아져 나오는 반면 중·장년의 볼거리는 점점 사라지고, 젊은 세대들의 흥미위주인 프로그램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듯하다. 미용에 대한 가치관도 이제는 '예쁜 것' 보다 '동안'으로 옮겨가고 있다. TV속에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어려 보이기 위해(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나이를 속이기도 한다.

그리고 성형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현상에 편승해서인지 언젠가부터 나잇값에 대한 부담감이 아닌, 나이 먹는 그 자체를 사람들이 부정적이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정말 중요한 알맹이보다 보이는 껍데기에만 자꾸 치중해 가는 사회현상의 단면이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된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나 자신에만 빠져 있지 않고 가족, 사회, 나라를 두루 생각하는 얼이 큰 사람이 바로 어른이다. 그래서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자신 외에 부모를 생각할 줄 알고 자신 외에 다른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면 '어른스럽다'고 칭찬을 한다. 반대로 자기 자신만의 이익, 자기 가족만의 이익, 자기가 속한 집단만의 이익만을 위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가 많더라도 그 사람은 얼이 크고 혼이 성장한 어른이 아닌 얼이 썩은 즉 어리석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나이란 어른스러움을 쌓아 갈 수 있는 시간이고,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그 시간에 맞추어 '어른스러움'의 알맹이를 채워 나가는 것이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들이다. 조금이라도 어려보이기 위해 화장품을 더 찍어 바르고, 주름을 감추고, 성형을 하는 것에 매달리지 말기를 바란다. 육신이 늙어 감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다.

2005년에 작고하신 재야 사학자 최태영 옹의 이야기를 잠시 하고자 한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고 우리역사 왜곡에 앞잡이 노릇을 했던 우리나라 주류사학계의 대부 '이병도'를 뉘우치게 하여 신화로 가르쳐 온 단군과 고조선이 실제 역사이고 실존인물이었음을 스스로 알리게 만들었던 그는 70세에 우리상고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해방 후에도 바로잡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교육되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잘못 쓰인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열정이 70세 나이를 가진 육체를 움직이게 했고 105세의 연세로 작고하시기전까지 많은 연구결과와 <인간 단군을 찾아서> <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등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이와 같이 나이를 먹어 육신이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열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열정이 없다면 젊은 사람이라도 그 가능성은 줄어든다. 반대로 나이가 많더라도 열정이 살아있는 사람은 그만큼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내 나이가 몇인데….' 하면서 스스로 한계선을 긋지 말아야 한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올해도, 그 다음해에도 이 사회에 어른스러움을 잃지 않고 열정이 식지 않는 진정한 어른이 넘쳐나기를 바란다. 필자 또한 항상 그러한 노력의 선상에 있기를 기도하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