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해전사에 신화로 남겨진 필승의 해군제독, 전란의 위기를 승리로 이끈 구국의 영웅,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기틀을 다진 개혁가, 거북선과 학익진의 해전원리를 창안한 전략전술가.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고 다양한 그의 일면들은 한 가지 재능을 꽃피우기도 힘든 인간 두뇌의 가능성을 새삼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엇이 그를 이 같은 영웅으로 성장하게 만들었을까.

두뇌의 무한한 가능성 일깨운 건 ‘불굴의 신념’

▲ 한산도 제승당에 있는 충무공 영정

이순신은 한 번의 실패를 딛고 32세가 되어서야 무관에 입성했고 조부는 사화에 연루되어 죽었으며 그로인해 이순신도 10여 년을 변방에 나가있었다. 세상은 그를 업신여겼고 그의 진면목을 알아주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칼날이 무뎌질 대로 되어있어야 마땅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칼날은 녹슬지 않았고 그의 두 눈은 언제나 바다 건너에 가있었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난 그에게 조선의 바다를 지킬 기회가 왔을 때 그는 드높이 비상했다. 마치 움츠렸던 기지개를 펼치고 멀리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이순신은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후, 불과 1년 만에 1만 5천의 병력과 24척의 판옥선 그리고 비밀병기 거북선의 진수까지 갖추었다. 당시 경상우수영의 함대가 고작 판옥선 4척이 전부였던 것을 비교하면,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준비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간 뇌에 있어,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기능을 통틀어 ‘의식’이라고 한다. 의식에는 누구나 감각적으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공통된 의식이 있고, 사람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내는 정신적 자질이 있다. 신념, 의지, 열정 같은 것이 그러하며, 이 같은 정신적 자질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바탕이 되고 그 행동은 사람의 생을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인간 두뇌기능발현의 바탕이 되는 이러한 정신적 자질의 차이는 무엇으로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에서 비롯된다. 5%도 채 쓰지 못한다는 인간이 가진 뇌의 기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은 바로 이러한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신념의 씨앗도 싹을 틔우지 않는 것은 인간의 두뇌 잠재성 발현에 적용되는 원리원칙이다. 오랜 인내의 시간과 드높은 비상은 그가 품었던 ‘신념’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충무공 이순신의 창의성, 신념에서 비롯된 열린 사고

▲ 거북선과 학인진의 해전술, 지리적 활용, 일사불란한 함대운용으로 거의 완벽한 승리를 가져온 임진왜란 최고의 해전 한산도대첩.

오늘날 세계 제1의 창의적 CEO로 손꼽히며 애플신화를 이끈 스티브 잡스처럼, ‘창의성’은 늘 새로움과 도전으로 무장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창의력에 대한 정의는 아직 기초적 연구에 머물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칭되는 것은 ‘새로움’과 ‘사고의 확산’을 꼽을 수 있다. ‘군인’이라는 특수한 신분과 전쟁의 위기상황 속에서 조선의 해군을 이끄는 제독과는 언뜻 어울리지 않는 두뇌기능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보여준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현대의 창의적 CEO로서도 손색이 없음을 짐작케 하는 여러 대목이 나온다.

<1> 세계해전 지각변동 가져온 ‘학익진’ 해전술
- 이순신은 임진왜란 7년 전쟁 중 23전 23승의 세계 해전사에 다시없을 신화를 이루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백병전으로 승패를 가늠하던 그 시대에 현대전에서나 볼 수 있는 순수함포전을 구사했고 학익진으로 대표되는 창의적 해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당시 임진왜란 때 펼친 해전술은 일본해군에 의해 깊이 연구되었으며, 현대 해전사에서나 볼 수 있는 ‘일시집중타(Salvo 사격법)’의 원조로서 훗날 세계 해전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조선수군의 위용을 이끈 나대용과의 만남
- 이순신의 23전 전승신화의 바탕에는 조선수군의 우수한 전선이 커다란 몫 했는데, 이의 발단은 훈련원 봉사로 있다 낙향하여 거북선연구에 3년간 몰두해온 나대용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당시 이순신은 주변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대용을 파격적으로 전라좌수영 수군 전선을 건조하는 감조군관으로 임명, 거북선과 판옥선 등 조선 수군의 주력전함건조를 모두 맡겼다.

<3> 이순신의 창조적 인사관리
- 당시에는 수급을 기준으로 하는 공로평가제도로 논공행상을 부여했다. 하지만, 해전방식이 완전히 달랐던 이순신에게 수급기준방식은 많은 문제점이 있었기에 그는 1 , 2, 3급으로 나눈 새로운 종합평가방식을 채택했다. 독특한 해전술만큼이나 사후 공로평가와 인사관리에도 매우 창의적인 방식을 택했던 셈이다.

<4> 무인을 넘어 다양한 재능을 깨워라
- 이순신은 무인이었지만 뛰어난 문인이었고, 지리학과 진법도 그리기에도 뛰어났다. 이순신의 문집인 <난중일기>와 <임진장초>는 <징비록>, <선조실록>과 함께 임진왜란 3대 고전으로 손꼽히며, 그가 전쟁 중 임금에게 올린 장계는 그 상세한 기술과 깊이가 역사서를 방불케 한다. 그는 무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유교경전과 각종 병서를 가까이 했으며, 전쟁에서 지형지물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해 젊은 시절부터 지리에 대해 많은 사례연구를 해왔다.

뇌는 언제나 외부자극을 원하고, 새로운 도전에 반응한다. 처음에는 많은 저항을 받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다보면 언젠가 새로운 기능이 깨어나게 된다. 그렇게 피어난 재능이 기존에 가진 것과 시너지를 일으킴은 물론이다. 외부군인으로서 투철한 원칙주의자였지만 언제나 새로운 분야를 넘나드는 이순신의 이러한 열린 사고는 그의 일관된 신념에서 비롯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신념이 결국 군인이자 전략가를 넘어 땅을 개간하고 염전사업까지 벌였던 경영자로서, 거북선과 학익진의 세계적인 해전술을 만들어낸 위대한 창의적 재능을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음이다.

칼날을 외부가 아닌 스스로에게 겨누다

▲ <이충무공전서>에 실린 전라좌수영 거북선도

이순신은 적이 많았다. 비주류였으며 원칙주의자였던 올곧은 성품 이외에도, 변방을 떠돌던 무관에서 그의 절친한 지기였던 유성룡에 의해 천거되어 몇품계를 뛰어넘는 지위에 올랐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거듭되는 육지의 패전으로 패망의 위기 속에서 계속되는 이순신의승리는 그를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르게 했고, 시간이 갈수록 선조 역시 끊임없이 그를 견제했다. 유성룡의 반대편에 서있던 그의 정적들은 더더욱 심했다. 두 번에 걸친 백의종군이 그 같은 상황을 반증한다.

하지만, 수많은 정적과 긴장관계 속에서도 그의 눈은 항상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바다도, 왜도 아닌, 바로 이순신 자기 자신이었다. 그의 칼날은 언제나 스스로를 향했고, 이 같은 자세는 국내외의 수많은 적들로 둘러싸인 상황 속에서도 오직 조선의 바다를 지키겠다는 신념이 피어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이순신이 스스로를 향해 겨눈 칼날은 뇌기능 측면에서 보면 ‘통합성’을 가져오는데 있어 긍정적인 작용을 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온 마음을 내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뇌의 입장에서 보면 뇌의 일부가 아닌 다양한 기능이 통합적으로 작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은 집중할 때 가능하며, 집중은 대상을 필요로 한다. 한 점에 집중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 집중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목표에 집중할 수도 있다.

▲ 임진왜란 해전 중 가장 힘든 싸움이었던 부산해전

자신이 진실로 이루고 싶은 큰 목표가 있을 때, 그것에 집중하면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꿈이 있고, 비전이 있는 구체적인 사람일수록 두뇌활용능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순신의 경우 수없이 많은 적들과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그의 뇌가 모든 에너지를 쏟고 싶은 커다란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비전은 다름 아닌 도탄에 빠진 조선을 구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인간은 태어나서 살아가면 한두 가지 재능을 꽃피운다. 물론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무엇이 뇌에 잠재된 능력을 일깨우는 것일까.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국가의 위기를 구해낸 해군제독,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해전술, 창의적 인사관리와 부하들의 절대적 신뢰, 수많은 인재의 등용, 뛰어난 문인으로서의 재능 등 이순신이 보여준 두뇌능력은 한 사람이 가지기엔 너무나 다양하고도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의 이 모든 재능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닌 오랜 인고의 세월과 그 기간동안 그가 품었던 ‘불굴의 신념’이 바탕이 되었음을 눈여겨볼만 하다.

스스로가 기뻐할만한 꿈을 가진 사람이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듯, 모든 것을 바쳐서 이루고픈 목표는 우리의 뇌 속에 잠재된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원천이 된다. 그 목표가 개인의 것이 아닌 더 큰 곳을 향할 때, 언제나 달려가고픈 비전이라고 여길 때 뇌는 뜨겁게 반응한다. 원균이 칠천 량 전투에서 대패하여 단 열두 척의 배만이 남았을 때, 이순신이 선조와 조정에게 던진 말은 이순신이 품었을 신념의 무게를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다. ‘신臣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신臣이 살아있는 한 왜적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글 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 이미지 제공 《부활하는 이순신》(황원갑 저, 마야)
[참조] 이순신과 임진왜란 (이순신역사연구회 저, 비봉)

* 이 기사는 한국뇌과학연구원 발행 <브레인>과의 제휴를 통해 본지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