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천안함 속보를 접하지만 젊은 해군들의 생환소식은 점점 멀어져 가니 답답한 가슴에 돌덩이는 바위로 변해 갈 뿐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이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이렇게 일어나다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자식들의 구조에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따르자 장병들의 부모들은 생물학적으로 생환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천안함의 인양에 전력을 다 해달라고 했지만 애타는 부모 심정이야 누가 무엇으로 말하겠는가?

살아 돌아온 내 아들 동료들과 눈물로 만난 자리에서 촌각을 다투는 사지(死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 왔지만 오히려 살아 돌아왔음이 죄스러운 천안함 장병들! 함장과 장병들은 칠흑 같은 바다에서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의 분신 배의 갑판에서 피를 나눈 장병들 한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전쟁 같은 상황을 보내고 밀려드는 바닷물에 죽음을 맞이하는 동료들을 뒤로 한 채 퇴함(退艦)할 때 그 마음을 우리는 안다. 필자도 젊음을 3년간 백령도에서 보냈기에 차가운 바닷속의 자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어 온다.

●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1909년 10월26일 아침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3발의 권총으로 이승을 하직하게 하고 바로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부르고 순순히 자수했다. 그 다음해 1910년 3월26일 여순 감옥에서 순직한다. 안중근 의사의 총탄을 맞고 부상당한 만주철도 이사 다나카 는 " 그가 총을 쏘고 나서 의연히 서있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광명처럼 빛나는 신(神)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참으로 늠름했고 태연했는데 그런 훌륭한 인물은 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우리 밀양에는 호국의 표상 사명대사가 있는데, 표충비각에는 지금도 나라사랑 정신이 땀으로 후손들의 국혼을 깨우고 있다. 당신께서는 산속에서 살생을 금하라는 불법에 귀의하여 수도하던 중 섬나라 왜의 침략으로 금수강산에 개다 소리가 들려오자 주장자와 염주를 내려놓고 승병을 모집하여 왜와 대적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1604년 국서를 받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법력으로 3천5백 명을 무사히 데리고 돌아왔다.

● 석정 윤세주, 약산 김원봉

우리나라에는 천안 독립기념관, 안동독립운동기념관과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밀양에서 이역만리 넓은 중국의 황량한 들판과 산을 숨어 다니며 오직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귀한 삶을 살다가 가셨다. 그 독립운동 현장을 밀양여고, 밀양동명고 그 외 학교의 학생들이 역사기행을 하고 와서 인생관이 바뀌어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한단 섭현에서 석정 윤세주열사의 무덤을 지키고 있는 중국 노인은 중국이 못한 일을 멀리 밀양 출신열사가 해 주어 평생을 보은하는 마음으로 돌보고 있다는 말씀이 귀가에 맴돈다.

● 조국의 제단에 한주호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귀천(歸天)한다, 이법을 우리 선도에서는 뒈졌다. 돌아가셨다. 붕어하셨다. 천화하셨다고 한다. 마지막 천화라는 의미는 사람이 하늘화 되었다는 의미로 지구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영혼의 완성을 위한 삶을 살다가 하늘의 법대로 돌아가셨다는 뜻이다. 50중반의 나이에 심해를 잠수하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아들 같은 천안함 침몰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하신 한주호 준위가 천화를 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효충도(孝忠道)정신을 가정에서부터 생활화해 왔는데, 그 정신의 뿌리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정신인 홍익인간(弘益人間)철학으로 우리의 핏속에 대대손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 정신은 나라가 어려울 때 더욱 발휘하는데 임진왜란, 병자호란, 기미년독립운동, IMF로 나라가 어려울 때 금 모으기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님의 희생 군인정신을 인간사랑, 나라사랑, 지구사랑 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이 나라를 있게 한 호국영령들이여 한주호 준위를 조국의 제단에 올려 주십시오.

김수곤 동명고 교사, 경남국학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