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공동으로 일본인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한 독립유공자, 가네코 후미코(여, 2018년 애국장)·후세 다쓰지(남, 2004년 애족장) 선생을 ‘2023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선생은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를 받다가 아홉 살 때 한국의 고모부 집으로 보내졌다. 1919년 3월 충북 청주군의 3.1운동을 목격하고 한국인의 처지에 깊이 공감했다.일본으로 돌아와 1922년 나중에 배우자가 된 박열(1989년 대통
3월 3일 ‘삼겹살 데이’처럼 ‘한우 데이’도 있다.소 우(牛)자의 획을 십(十)과 일(一), 일(一)로 풀어 11월 1일이자 한우가 최고라는 의미에서 으뜸을 뜻하는 1이 세 번 겹친 날을 한우협회 등 관련 단체가 2008년부터 한우 소비 촉진을 위해 정한 기념일이다.우리나라 소의 역사는 서기 전으로 올라가며, 김해패총 속 소뼈와 고구려 벽화 등으로 살펴 볼 때 2,5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또한, 우리나라의 재래 소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황색 한우 외에도 털 색이 매우 다양했다. 1399년(정종 1)에 발간된 수의학서 ‘신편집성마의
우리가 자주 보는 한우는 누렁이 황소가 대부분이며, 제주도와 거제도에서 흑우가 있어 국가제례에 쓰여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역사 속에는 더 다양한 털색을 가진 한우들이 있었다.조선전기인 1399년 말과 소에 관한 수의학서인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에는 우리나라에 칡소, 흑우, 백우, 청우 등 여러 털색을 가진 한우가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일제강점기 털색 개량의 방향을 황색으로 고정하면서, 황색 한우를 제외한 백우와 칡소, 흑우, 제주흑우 등은 잡소로 취급해 자취를 감췄다.국립축산과학원은 2009년 정읍과 대전에서
농경사회인 조선시대에는 풍요로운 나라를 꿈꾸는 마음을 담아 국가제례 때 소머리와 발굽 모양의 세발이 달린 제기인 ‘우정牛鼎’에 특별히 기른 흑우(제주도 또는 거제도)고기를 사용했다.국립고궁박물관은 소띠 해를 맞아 중요한 노동력이자 재산이던 소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1월 큐레이터 추천 왕실유물로 ‘우정牛鼎’을 선정하고 4일부터 문화재청 유튜브와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다.‘우정’은 종묘에서 사용되던 제기 중 삶을 쇠고기를 제례 장소까지 옮기는데 사용했는데 우정의 경우 뚜껑에는 소우牛자가 새겨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욱, 이하 한중연)은 대표적 한국학 분야 전문 학술지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2020년 가을호(통권 160호)를 9월 10일 발간했다.이번 2020년 가을호 특집은 “조선시대 제주문화: 학풍·회화·복식·의례”를 주제로 하여 조선시대 제주를 지식문화사 관점에서 관찰하고, 그것이 갖는 한국문화사 체계 내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흥미롭고 유의미한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 먼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김학수 교수는 “제주지역 유교 지식(知識)‧문화(文化)의 수용 양상과 ‘제주학풍(濟州學風)’: 주자학적 예교
(사)박열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박인원) 주관으로 제45주기 박열(朴烈)의사 추모제가 1월 17일 경북 문경 박열의사기념관 1층에서 거행되었다. 추모제에는 허정열 문경부시장, 김인호 문경시의회의장, 엄재엽 문경시교육장, 김상출 경북북부보훈지청장, 한현근 문경시문화원 원장을 비롯한 180여명의 시민이 참석하였다. 추모제는 개회사, 약력소개, 의사 약력 소개, 추모사, 헌화·분향, 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허정열 문경부시장은 추모사에서 “우리들은 의기를 품고 일본제국주의에 당당히 맞선 박열의사의 혼백을 위로하고 그 위업을 기리고자 이
일본으로 가는 세 항로 신라인이 동해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서 임금이 되었다는 전설이 우리나라 사서인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유명한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이야기다. 때는 서기 157년 연오랑 부부는 동해안(迎日灣:영일만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연오랑이 바다에서 해초를 따다가 갑자기 나타난 바위(또는 고래)에 납치되어 일본으로 끌려갔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원심창 선생을 2013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1906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한 원 선생은 3·1 만세운동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됐다.1923년 일본 도쿄의 니혼(日本)대학 사회과에 입학했으나 학비 조달의 어려움으로 자퇴하고 독학으로 아나키즘을 배웠다.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과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