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꽃피었던 실학 전통을 사학 분야에서 탁월하게 계승했다고 평가받는 한치윤・한진서는 시종 외국 자료[중국 523종, 일본 22종]로 우리 역사를 살펴보고자 했다. 유교가 도입되기 전 민족 고유 사상과 역사인식에 근거한 고기류를 "허황되고 근거가 없는 말이라 사대부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것"(“東史 凡幾種哉 所謂古記 都是緇流荒誕之說 士大夫不言可也”, 《해동역사(海東繹史》(1823))이라고 보았기에 중국인과 일본인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보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남의 기록만 가지고 역사를 쓰면 그 역사는 남의 것이 되어 버
주자학에 실용적 사유와 경세론을 결합시켜 실학을 정립한 조선 실학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정약용이지만 그의 고대사 인식에는 단군조선은 물론 단군왕검도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 기록이 아닌,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기록들은 모두 허황되고 거짓되어 근거가 없다(“故我邦史冊 據漢魏晉諸史 點綴成文 其或收拾於本國之傳記者 皆虛荒誕妄不根之說”, 《아방강역고》(1811) 변진고)는 기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약용은 단군에 대한 믿을만한 문헌자료가 없다고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 글에 선인 왕검이란 설이 두루 실려 있지만 왕검(王儉)이란 이름도 지명인
오늘날 충남과 충북을 아우르는 호서지역에 펼쳐졌던 고대 마한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은 어떠했을까? 삼국지 위서 동이전, 삼국사기, 해동역사 등에 등장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마한의 태동과 발전, 교류와 변천을 다룬 전시회가 열린다.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국립청주박물관, (사)한국문화유산협회와 공동으로 오는 4월 30일부터 8월 11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 청명관 기획실에서 ‘호서의 마한, 미지의 역사를 깨우다’ 특별전을 개최한다.총 104일간 열릴 이번 전시회는 총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문헌 속 삼한’을 주제로 삼국지 위서 동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인근 해역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해역에서 진행한 수중문화재 조사에서 남송(南宋)대 중국도자기 등 550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다.신안군 흑산면 인근 해역은 제보자 신고로 긴급히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중국의 고급 도자기 산지로 알려진 '저장성(浙江省) 룽취안요(龍泉窯)'에서 만든 양질의 청자 접시 등 50여 점의 중국도자기를 확인했다.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해역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간 세 차례에 걸쳐 제주대학교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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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또는 '공후인(箜篌引)'은 고조선의 시가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 고대 문학 작품이다. 첫 구를 따서 ‘공무도하가’라 부르기도 하고, 하프와 비슷한 악기인 공후를 타며 부른 노래라 하여 ‘공후인’이라고도 한다. 사언사구(四言四句)로 된 짧은 한시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고조선 시대를 살
고조선시대의 시가인 '공무도하가'는 역사인가? 혹은 문학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인 요소와 문학작품으로서의 요소를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고조선은 대한민국이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음을 알려 주는 한국사의 기원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 시대의 역사적 사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그것을 입증하려면 다양한
고조선시대 사람들은 무슨 옷을 입고 살았을까? 진수의 『삼국지』「위서동이전」 ‘부여조’에 따르면, "이 나라 사람들은 흰 옷을 숭상하여 겉옷인 장의와 바지는 흰 천으로 만들어 입었으며 가죽신을 신었다. 국경 밖으로 나갈 때는 비단 옷과 견직물로 만든 옷을 착용했으며, 대인들은 여기에 여우나 짐승의 모피 혹은 희거나 검은 담비 모피가 붙은 장의를 입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