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격동의 아시아, 1‧2차 아편전쟁의 결과 청의 수도이자 황제의 도시인 베이징이 서양인에게 활짝 열렸다. 청은 영국을 위시한 서양 제국들에 속수무책으로 패했고,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와 각각 텐진조약과 베이징조약을 맺었다. 조약을 맺은 국가의 서양인은 중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당시 동아시아로 향한 서양인들의 시선은 중국을 넘어 유일하게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어떠한 통상 요구나 조약도 거부하던 조선을 향했다. 종교적 관심 또는 학문적 호기심, 무역 이득에 대한 기대 등 이유는 다양했다.그 시기 조선 조정은
올해로 8회째 ‘쌀의 날’을 맞았다. 쌀 산업의 가치 인식을 확산하고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정했다. 8월 18일을 쌀의 날로 지정한 것은 한자 쌀 미(米)를 풀어낸 ‘八, 十, 八(8.10,8)’과 여든여덟 번 농부의 손길을 거쳐야 쌀이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옥수수, 밀에 이어 세계 3대 곡물이자 2대 식량 작물로 꼽히는 쌀은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주식이면서 일상 문화였다. 아무 탈 없이 편안한지 안부를 물을 때도 “밥 먹었니?” “진지 드셨어요?”라고 하고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에
19세기 조선에서 인기 있었던 《춘향전》에 수많은 고사와 한시(漢詩)가 나온다. 이 한시는 당나라 때 유행한 시로 ‘당시(唐詩)’라고 한다. 《춘향전》은 ‘열녀춘향수절가’라는 판소리로 누구나 두루 즐겼다. 예를 들면 이백의 ‘장진주’ 일부가 '열녀춘향수절가'에도 나온다.고대광실에서도 거울 속의 백발을 슬퍼하니 高堂明鏡悲白髮아침에 검은 실이 저녁에 눈처럼 희어지는 것을. 朝如靑絲暮成雪─ 이백, 「술의 노래(將進酒)」거문 머리 백발 되니 조여쳥사모셩셜(朝如靑絲暮成雪)이라 무졍한 게 셰월이라.─ 「열녀춘향수절가」의 암행어사
12월 9일 극장 개봉한 영화 는 김철민 감독이 18년간 일본을 오가며 만난 재일조선인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영화는 먼저 ‘조선학교’를 습격한 일본인들을 마주한 재일조선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재일조선인 3세 박정임과 박금숙 씨는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낸 학부모로 수년간 감당해야 했던 트라우마를 떨리는 목소리로 전한다. 아홉 살 아이는 연필을 바짝 깎아서 습격 데모 단체에 맞서는 무기로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의 이야기에 일본인들의 혐오의 말과 행동에서 느끼는 공포심이 영화를
다큐멘터리 가 배급위원회가 함께하는 전국 ‘어깨동무’ 상영회 일정을 공개했다.이 다큐멘터리에는 특이하게 배급위원회를 결성하여 전국 ‘어깨동무’ 상영회를 추진한다.다큐멘터리 관계자는 “전국 ‘어깨동무’ 상영회는 일본은 차별하고 한국은 외면했지만,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를 널리 알리고 그 뜻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자 배급위원회와 함께 기획되었다.”고 밝혔다. 배급위원회에는 겨레하나,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다큐멘터리 가 차별과 혐오를 딛고 다 함께 우뚝 선 재일조선인의 모습이 담긴 메인 포스터를 공개했다.는 (2015)을 연출한 김철민 감독의 3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시대가 외면하고 이념이 가두었지만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온 사람들, 재일조선인 76년의 역사를 사려 깊게 집대성했다. 공개된 메인 포스터는 운동장에서 다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득 채운다. 운동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 사진용 포즈를 완성하는 아이들에게서 하나된 재일조선인들의 단합심이 느껴
일본은 차별하고 한국은 외면했지만, 단 한 번도 조국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 바로 재일조선인이다. 재일조선인의 삶을 담은 영화 이 12월 9일 극장 개봉을 확정 짓고, 런칭 포스터 2종을 공개했다. 는 시대가 외면하고 이념이 가두었지만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온 사람들, 재일조선인 76년의 역사를 사려 깊게 집대성한 다큐멘터리이다. 는 (2015)을 연출한 김철민 감독의 3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로, 18년간의 취재와 성찰로 담은 재일조선인 역사을 사려깊게 집대
한글 보급 앞장선 이윤재,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중 순국이윤재(李允宰, 1888. 12. 24.~ 1943. 12. 08.) 한글학자는 조선어사전을 만들려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했다.한뫼 이윤재(李允宰, 1888. 12. 24∼1943. 12. 8) 선생은 경남 김해부 우부면 답곡리(현재 김해시 대성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한뫼, 한메, 환산(桓山)이다. 여섯 살 때인 1894년부터 선생은 향리의 서당에서 10여 년 동안 한학을 수학하였는데, 그 재주가 뛰어나 주위에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신명균(申明均, 1889-1940)의 호는 주산(珠汕)이다. 서울출신이다. 그의 모습은 크게 넷으로 나뉜다. 한글학자, 교원, 출판사 경영, 대종교인이다. 먼저 한글학자의 모습이다. 그는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주시경을 만나서 조선어강습원에 들어간다. 조선어강습원은 중등과와 고등과가 있었는데, 중등과는 3회(1912), 고등과는 1회(1913)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의 중심이 나라는 것을 알고자 함일 것이다. 또 역사를 통해 나와 우리의 개념을 파악하게 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의 정의를 ‘아와 피아 간의 투쟁’이라고 했다. 이것은 존재인식과 연관이 있는 정의다.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생후 6개월부터 18개월 사이의 유아는 '거울단계'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