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롭게 단장한 기증관을 재개관했다. 이번에 문을 연 기증관은 2022년부터 2년에 걸쳐 이루어진 기증관 개편 사업의 결과물이다.이번 전시 개편은 모든 세대의 관람객이 문화유산 나눔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면서 기증된 문화유산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 조성을 목표로 했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이홍근 기증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 병'(보물)과 이근형 기증 '이항복필 천자문'(보물), 국립중앙박물관회 기증 '나전경함'(보물), 송성문 기증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제15'(국보) 등 국가지정문화유산이 다수 포함되어
“정미년(1607년) 이른 여름(음력 4월) 손자 이시중에게 써 준다. 오십 노인이 땀을 뿌리고 고생을 참으며 썼으니, 골짜기에 던져서 이 뜻을 저버리지 마라.”조선의 명재상으로 오성으로 잘 알려진 이항복이 52세가 된 정미년 여름에 여섯 살 어린 손자의 교육을 위해 손수 또박또박 적어 천자문을 만들고, 진심을 적어 당부한 말이다. 이 내용이 천자문 끝장인 126면에 행초서로 쓴 발문으로 적혀있다.관직에서 물러나 집에 은거할 때 쓴 것으로, 관료 생활과 임진왜란으로 인해 두 아들의 교육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이항복이 맏아들의 장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은 정악단의 기획공연 ‘필운대 풍류’를 오는 7월 13일(수)과 14일(목) 양일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 올린다.‘필운대(弼雲臺)’는 현재 배화여고(종로구 필운대로 1길 34) 뒤편에 있는 곳으로 19세기 당시 한양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최고의 명소로 꼽혔다.필운대는 인왕산 아래에 있어 도성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서대(西臺)라고도 한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는 석벽에 세워진 ‘필운대’ 세 글자는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 이항복(李恒福)의 글씨라고 하였다. 필운대 주변의 인가에서 복숭아나무를 많이 심어 도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석영(1855~1934) 선생을 ’2020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이석영은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으로 18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30세가 되던 1885년 과거에 급제한 그는 승지를 비롯한 요직을 지내며 고종 황제를 보필하다, 1904년 벼슬을 사양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는 가운데 동생 이회영이 국권수호운동에 나서자 이석영은 자신의 소유인 남산 쌍회정을 모임 장소로 제공하는 등 이회영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국외 무관학교 건립을 위해 서간도를
코리안스피릿은 올해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대일항쟁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운동가 10명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4월에는 우당 이회영(1867-1932) 선생을 소개한다.이회영 선생(1867. 4. 21.~1932. 11. 17.)은 서울 저동(苧洞)에서 태어났다. 한말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4남으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여 일가가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선생은 일제에 국권이 침탈당하자 장래가 보장된 명문대가의 자손으로 일신의 안락과 영화를 버리고 구국운동에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이회영, 이시영,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은 우당 6형제의 독립운동 기획전을 8월3일부터 10월1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광복 72주년을 맞아 서울의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6형제의 독립운동을 조명한다. 구시대의 끝자락에서 나라의 쇄신에 노력했고,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자 나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바쳐 회복에 헌신하다 마침내 목숨까지
통영은 아름다운 절경과 맛깔스런 음식으로 유명하다.유엔이 인정한 지속 가능한 평생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다. 고성반도와 연계하여 육전을 치를 수도 있기에 임진왜란 이후 당시 국방부장관인 이항복에 의하여 삼도수군 통제영으로 낙점되어 현재에 이른다.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로 불릴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통영은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함과 위대함을 더하고 있
역사란 때로는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이것은 공감되는 역사는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공감되지 않는 역사는 여전히 낯설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와의 공감은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이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감정적인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감성적인 사람이다. 감정적이면 오로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다른 사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은 전쟁 전(前) 단계에서 줄곧 명의 전쟁관련 문제에 대한 정책결정자였다. 그는 명군의 조선 파병을 주도하였지만 봉공 실패후 투옥되어 옥중에 사망했다. 석성은 명나라 공부, 예부, 병부상서를 역임하였고 일찍이 만력연간의 3대 전쟁을 주도적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석성은 왜 조선에 대해 우호를 베풀었는가. 이에 대해 조선에서는
604년 선조37년 10월, 왕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몽진에 호종한 이충원(李忠元:1537∼1605)에게 공신교서를 내렸다. 완양부원군 이충원 호성공신 교서 (完陽府院君李忠元扈聖功臣敎書)다. 교서에는 이충원의 천품 ·자질과 역관사실(歷官事實)을 서술하고, 임진왜란 때 진충(盡忠)하여 국난을 회복한 공을 찬양했다. 또 공신의 특전으로 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