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들어 제천의례는 본격적으로 유교식으로 바뀐다.《고려사》 ‘세계(世系)’에는 성종 2년(983) 정월에 왕이 친히 원구(圓丘)에 제사하여 곡식의 풍작을 기원했는데 태조의 신위를 하늘에 배향하였다. 이것이 고려 제천의례의 최초 기록으로 이때부터 기곡제(祈穀祭)가 시닥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고려사》에는 제천의례를 거행한 기사가 12건 수록되어 있다.원구는 고려의 국가제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사로 연 2회 거행되었다. 정월 첫 신일(上辛)에 원구단에서 기곡제를 지내고, 4월에는 길일을 택하여 우제(雩祀)를 지냈다.원구단은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서울지방보훈청이 후원하는 현충시설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을 매주 실시한다. 그 세 번째 탐방지는 장충단 호국의 길에 있는 현충시설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1일 학생과 학부모 120여명이 탐방에 참가해 장충단의 역사를 직접 찾아갔다.장충단은 충(忠)을 장려하는 제단이라는 뜻으로 고종황제가 1900년에 세운 우리 민족 최초의 현충시설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때 일본 낭인들에게 항거하다가 전사한 훈련대장 홍계훈과 장병들을 위한 사당을 건립하였고 이후 궁내부대신 이
여름 극장가는 역사영화가 주류입니다. 과 는 6.25 한국전쟁과 대일항쟁기를 소재로 680만 명과 490만 명 관객(24일 기준)을 동원했습니다. 작년에는 과 이 흥행을 거뒀지요. 2014년에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영화 이 1,70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관람수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역사가 스크린을 통해
곽영철 법무법인 충정 고문변호사가 제헌절을 맞아 '헌법상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검토한 글을 보내왔다. 곽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헌법전문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선언하고 있는데 헌법학계나 법조 실무 상 지금까지 별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며 "어느 국가나 국가의 정체성과 건국이념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국가의 기본을 이루는 매우 중차대한 일이므로 앞으로 헌법학계의 활발한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문을 3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헌법상 대한민국의 건국이념1. 헌법전문과 건국이념우리 헌법은 1948년 7월 12일 제정되었고 그 후 9차에 걸쳐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30개 조문에 달하는 헌법 규정 중에서 헌법의 최고원리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전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헌법은 헌법전문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선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헌법학계나 법조 실무 상 지금까지 별 관심을 끌지 못하였지만, 어느 국가나 국가의 정체성과 건국이념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국가의 기본을 이루는 매우 중차대한 일이다. 앞으로 헌법학계가 활발히 논의하기를 기대한다. 국가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이 문제에 관하여 관심을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본다. 국민으로서의 기본적 책무이기도 하다.▲ 곽영철 법무법인 충정 고문변호사.2.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의미우리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 ” 라고 시작된다. 여기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란 무슨 의미인가? 역사학에서 보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즉 1961년 12월 2일 제정‧공포된 연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으나 1948년 헌법제정과 함께 시행된 본래의 우리나라 공용연호는 단기(檀紀) 즉 단군기원으로 하는 것이었으므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란 바로 이 단기연호에 따른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1948년 7월 우리 헌법을 제정할 당시의 헌법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헌법 제정 당시의 헌법전문에 비추어 보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란 바로 단기연호에 따른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와 전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함이 더욱 명백해진다. 올해가 단기 4348년인데 이 단기 역사가 있으므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가리켜 반만년 역사, 유구한 역사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도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서 현재 서력기원을 쓰고는 있으나 서력기원이 우리의 역사는 아니다. 서력기원 이전에도 우리의 역사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력기원 이전에 이미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정신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 식민주의 사관과 중화 사관 그리고 소위 실증주의 사관 등의 영향으로 마치 우리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비로소 시작되었고 삼국시대 이전에는 신화일 뿐 역사가 없었다는 그런 견해가 우리 사회에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역사의 진실이 아니다. 단군조선의 존재는 우리 사학계도 이제는 정면으로 인정하는 역사적 실체이고 우리나라 초‧중‧고 역사교과서에서도 단군조선의 실체를 인정하고 역사적 사실로 기술하고 있다.나. ‘대한’의 의미‘대한국민’ ‘대한민국’이라 할 때 이 ‘대한’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나라의 국호에 ‘대한’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고종황제이다.『조선왕조실록』 1897년 10월 11일자의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개국초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으니 지금 천하의 호칭을 ‘대한’으로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라고 하고 앞으로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라고 명한 바 있다.(我邦乃三韓之地, 而國初受命, 統合爲一, 今定有天下之號曰大韓, 未爲不可, … 竝以大韓, 書之可也. 「고종실록」 1897. 10. 11.) 그리고 이틀 후 고종황제는 원구단에서 하늘에 천체를 올리고 대한제국의 출범을 천하 만방에 선포하였다.우리나라는 본래 삼한이었다. 즉 고조선시대에 초대 단군왕검이 나라를 진한(眞韓), 번한(番韓), 마한(馬韓)으로 나누어 다스린 것이 삼한의 시초이므로 그 ‘한’을 되살려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도록 명한 것이다. 19세기 말 고종황제가 ‘조선’ 대신 ‘대한’이란 새로운 국호를 선포한 것은 우리나라가 고조선의 삼한을 계승한 자주독립국임을 천명한 것이다. [계속] 글. 곽영철 법무법인 충정 고문변호사.
1392년 조선 건국 후, 2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 사회는 뿌리부터 흔들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적 각성이 강하게 일어나며 성리학을 중심으로 했던 기존의 사상에 대해 새로이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17세기 후반 숙종 대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의 정통적 역사인식이 강화되며 덩달아 선도
궁궐은 국왕이 사는 집이며 왕이 살며 활동을 하던 곳이다. 왕이 즉위하기 전 살던 집은 '잠저'라 한다. 조선시대 제일의 궁궐은 경복궁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가장 먼저 축조한 궁궐이 바로 경복궁이다. 이를 법궁(法宮)이라 한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에 자리잡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東闕)이라고 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로 다른 별개의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鎭山)이다.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데 큰 읍이다. -고려사""무등산은 현의 동쪽에 있는 진산이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지난 4일 광주를 찾았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30분이 걸렸다. 광주 단군문화유산으로는 2곳을 꼽을 수가 있다. 무등산 천제단과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단성전이다. 매년 개천절이 되면 천제를 지내고 기념
서울 관광객에게 남산타워는 명소다. 남산타워에 오르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 단군상이 보이는 건물이 있다. 원구단에서 개천행사를 치르는 남산제례문화원이다.문화원은 남산케이블카에서 충무로로 내려오는 길 왼편 돈가스 식당가 뒤편에 있다. 서울지하철 명동역 3번 출구로 올라가는 코스도 있다. 중국대사관 영사부로 10분 정도
전통의례방식으로 고증한 개천행사지난해 11월 5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 옆 원구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날 남산제례문화원(원장 신복동) 주최로 음력 개천절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8각 3층 건물인 황궁우 중앙에는 대형 단군영정(天眞)이 걸렸고 좌우로 태극기와 천부경이 걸렸다. 남산제례문화원은 고증된 전통의례방식대로 진행된 개천축제로 봉행했다.사전
국학원에 전국 곳곳에서 후원이 답지했다. 불과 두 달 걸렸다. 국학원 특별 후원 회원이 1만명을 넘어선 것은. 경기가 어렵다지만 나와 민족을 위한 일이기에 매달 후원하기로 한 이들이다. 한민족기념관을 꼭 세워 민족 정기를 바로세우고 올바른 역사를 알려주기를 이들은 바랐다.우리 민족은 오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유물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5천의 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