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뭐든지 하려 한다. 자기 힘을 키우기 위해 뭐든지 한다. 자기 힘으로 한다는 것은 자기가 기억하는 지식을 이용하여서 한다는 것이다. 물론 출중한 지식과 능력이 있으면 자신 있게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라고 하면서 그 힘을 쓴다. 또한 선천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열심히 노력하여 능력을 연마한다. 그것이 모자란다고 생각되면 능력자를 쫓아다니면서 교육을 받고 또 교육을 받아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자기의 힘을 빼고 나를 비우게 되면 어떨까? 성
우리의 의식은 외적인 면에 많이 쏠려 있다. 현상에 얽매이고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몹시 신경 쓴다. 또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 지식과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쏟는 노력을 보라! 그런데 이런 노력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힘을 알지 못한다. 우리 안에 잠재력과 힘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외부로 떠돌아다니면서 방황한다. 평소 외부에 눈이 쏠려 있기 때문에 내 안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우리의 몸을 몸집이라고 한다. 즉 정신의 집이 몸집이라는 것이다. 몸 안으로 집중하고 감각을 몸에서 느끼기만 하더라도 몸집에 정신이
자기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홀로 태어나 홀로 깨달은 사람들이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 감각이 있고 내재한다. 지구가 진화해 오면서 인류도 진화해 왔다. 인류의 몸에는 그동안 축적되어 왔던 많은 메시지와 본능이 살아 있다. 그 본능에 충실하면서 따라가면 된다. 그 본능을 무시하고 전혀 있지도 않은 것처럼 우리는 철저히 무시해 오면서 살아왔다. ‘잘 할 수 있어’ 보다는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앞서고 ‘나는 미래에도 잘 될 거야’ 보다는 ‘나는 이제
사람 안에는 무한한 잠재능력이 있다. 사람 안에 있는 세포도 무한한 능력을 보인다. 세포는 다른 세포들과 수용하고 교감하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른 세포와 담을 쌓는다든지 교신하지 않는 것은 세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포의 무한한 능력은 우주심이다. 우주가 바라는 것이 세포 안에 녹아 있고 그렇게 살라고 미리 정해 놓았다. 세포가 하는 일은 인간이 하는 일을 능가한다. 우선 내 몸에 상처가 나면 그 상처 난 부위로 여러 세포가 돕는다. 심지어는 자기와 관계가 없고 멀리 떨어져 있는 세포조차도 돕는다. 세포는 자기 것을 고
홍익인간사상에 의하면, ‘하나(一)’라고 불리는 우주의 근원으로부터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곧 우주만물이 갈라져 나온다. ‘하나’는 애초부터 그냥 그리고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만물의 시원으로, 거하지 않는 곳이 없는 편재적(omnipresent) 존재이다. 근본원리인 ‘하나’로부터 하늘과 땅과 사람이 갈라져 나온다는 관점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매시간 깨어 있는 것은 단전과 많이 연결되어 있고 단전을 깨우는 것과 같다. 매시간 깨어 있으면서 단전에 의식을 두게 된다. 크게 웃을 때도 단전에 의식을 두고 수련할 때에도 단전이며 여러 동작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단전에 의식이 간다. 한 시간 간격으로 어떤 동작을 취할 때 단전에 의식이 가지 않으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