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애를 살고 갔으나 남다른 문학과 예술적 재능을 가졌던 효명세자가 시작한 밤 궁중 연희의 상징 ‘사각유리등’이 새롭게 등장했다.옻칠을 한 나무틀로 짠 등에 아름다운 꽃 그림을 그린 유리로 사방을 두른 ‘사각 유리등’ 이 경복궁을 둘러싼 효자로와 청와대로, 삼청로, 창의문로, 창경궁로, 북인사마당, 창덕궁 돈화문로에서 350개가 종로의 밤을 밝히고 있다.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과 종로구청이 지난 12일 오후 6시 경복궁 신무문 앞에서 점등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본래 사각유리등은 바닥 틀 가운데 받침에 등잔이나 초를 꽂고, 유리등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나가고 있다. 정권교체를 위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족되어 그 업무를 개시하였다. 그중 최대 이슈가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한 청와대 이전이다. 청와대 이전을 두고 대립된 견해들이 존재하였지만 대통령 당선인은 강력한 의지로 대통령의 용산시대를 선언함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신청사 건물로 이전을 앞두고 있다. 청와대 이전과 관련해서는 막대한 이전 비용과 안보 공백 등의 이유로 반대 의견도 많았다. 대통령 관저도 집무실과 분리된 공간으로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리모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며 조선 초 경복궁 근정전과 사정전에 사용한 청기와를 재현하려 수많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했다. 제작기술이 끊겼기 때문이다. 사기그릇을 만드는 흙으로 조성하니 청기와 1장당 8냥으로, 당시 기와집 1칸 또는 초가집 2칸을 살 수 있고, 청기와 20장이면 소 1마리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서울역사편찬원은 고종 당시 경복궁 중건의 역사상을 담은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을 발간했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소장된 당시 공사일지 ‘경복궁영건일기’를 기반으로 했으며, 이강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를 비롯해 국내 건축,
조선시대 역대 왕 또는 왕으로 추존된 이들의 생모로, 왕비가 아닌 후궁 일곱 분의 신위를 모신 사당 ‘칠궁’을 따라 전문해설사의 역사해설을 듣는 특별 답사가 진행된다. 그동안 칠궁은 크게 알려지지 않다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시범개방 후 올해 1월부터 개방되었다.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오는 16일과 17일, 23일과 24일 도보답사와 역사, 인물에 관한 특별해설을 듣는 ‘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이야기’특별답사를 운영한다.칠궁은 원래 조선 21대 왕인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를 위해 세운 육상궁毓祥宮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선조의
문화재청 경복궁관리소(소장 우경준)는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迎秋門)에서 영추문 개방 기념행사를 열고, 1975년 복원 이후 43년 만에 전면 개방했다. ‘경복궁 영추문’은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으로 연추문(延秋門)이라고도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화재로 소실된 후 고종 대 흥선대원군이 재건하였다. 대일항쟁기인 1926년에 전차 노선이 부설된 후 주변 석축이 무너지면서 같이 철거되었다가 , 197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경복궁은 남쪽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북문인 신
문화재청 경복궁관리소(소장 우경준)는 경복궁과 서촌 지역 방문 관람객들의 편의를 높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경복궁의 서문 영추문(迎秋門)을 오는 12월 6일부터 전면 개방한다.‘경복궁 영추문’은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화재로 소실된 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재건하였다. 대일항쟁기인 1926년에는 전차 노선을 부설하여 주변 석축이 무너지면서 같이 철거되었다. 197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현재 경복궁 출입문은 남쪽의 광화문, 북쪽의 신무문, 동쪽의 국립민속박물관
내가 대기실에서 흰 한복을 갈아입고 현관 밖으로 나왔을 때, 어디에선가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통곡소리였다. 근화가 청동팔주령을 높이 들고 흔들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궁녀가 본전 밖에서 쭈그려 앉아 울고 있었다. 옷이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 말씀이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고 몸에 칼을 맞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궁녀가 전설의 고향에
굿을 하기로 한 날 하루 전 날 오전에 나는 거탑으로부터 그날 16시에 영계인 대통령실에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무슨 이유로 출두하라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출두하자 영계인 대통령의 의전 담당관은 나를 데리고 대접견실로 보이는 방으로 갔다. 그 방에 불이 켜있었고, 탁자들이 타원형으로 놓여 있었고, 10여 명의 영계인들이 누군가 나타나기를
대통령과의 면담이 정해진 날, 나는 전철을 타기로 하였다. 나는 12시에 집을 나서 완만하게 경사가 진 와우고개 길을 천천히 걸었다. 면담시간이 오후 2시이므로, 성주산에서 대통령궁으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1시간 반으로 잡는다고 해도 30분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러므로 서둘러 갈 필요가 없었다. 와우고개에서 약간의 습기가 느껴졌다. 비가 오려나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