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사학은 대종교와 함께 역사 무대에 다시 등장하였는데, 뜻밖에도 대종교와의 관련성이, 독립투쟁을 한 민족사학자(대종교사학자)들을 ‘제국주의적 경향을 지닌 국수주의자’라고 폄훼하는 평가로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민족주의를 국수주의라고 매도하는 인식은 손진태로부터 비롯되었다.한영우에 의하면, 손진태는 ‘바로 이러한 (청일전쟁 이후 1920년대까지의) 구(舊)민족주의는 애국적・군국주의적・제국주의적’인 것인데 그 바탕에는 센티멘탈리즘적인 것이 깔려 있다고 보았고, 그의 신민족주의는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민족주의를 반대하였다고 하였다.
지난 10월 개천절을 앞두고,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삼국유사》읽기’를 출간했다. 최광식 교수는 고대사 전공자가 드물던 1980년대 독특하게 《삼국유사》 연구를 시작으로 역사학자의 길을 밟았다.또한, 2003년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한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장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장, 제5대 문화재청장, 제46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 등 공직을 거쳐 역사가의 자리로 돌아왔다.국립중앙박물관장 당시 박물관에 ‘고조선실’을 필두로 역사관을 설치했고, 문화재청장 시절에는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 일본에서 조선왕실 도서를
6.25 전쟁이 발발한 첫해 9.28 서울수복 당시까지 서울특별시 납북자 4,616명의 명부가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된다.통일부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기념관이 소장한 유물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를 복원해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한다.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는 1950년 12월 1일 대한민국 정부(당시 공보처 통계국)가 조사해 발표한 최초의 납북자 명부이다. 북한이 서울을 점령한 6월 25일부터 9월 28일까지 피해 현황을 파악하는 객과적 자료로 가치가 매우 높다.해당 명부는 안재홍, 조소앙, 손진태 등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후 우리민족뿐만 아니라 우리말, 우리글도 큰 시련을 겪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에 대항하여 투쟁하며 우리말, 우리글을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일제는 그러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고 연구와 보급을 막고,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려고 하였다. 우리말과 글을 연구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들은 목숨을 걸고 우리말과 글을 지켜냈다. 선열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한글, 이제 우리가 갈고닦아 길이 빛내야 하지 않겠는가! 2020년 제574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을 지켜낸 독립운동가들을 살펴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서울지방보훈청이 후원하는 현충시설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을 매주 실시한다. 그 첫 탐방지로 5월 18일 윤동주문학관과 최규식·정종수 동상이 있는 서울 인왕산을 다녀왔다.1968년 1월 21일 북한의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이 1.21사태이다. 무장공비들이 자하문 초소에서 검문을 받고, 이에 불응하며 벌어진 총격전에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가 순직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주민등록증’을 갖게 되었다. 학생들은 ‘
▶ intro (바로가기 클릭)▶ 1편 위서론 논란, 종지부를 찍다! ▶ 2편 규원사화 진서론이 확산되다! (바로가기 클릭)▶ 3편 식민사학 극복 움직임으로 확산 (바로가기 클릭)▶ 4편 최광렬, 이상시 vs 송찬식, 조인성…위서논쟁 격화(바로가기 클릭)▶ 5편 “규원사화 첫 박사학위…학문적으로 인정”(바로가기 클릭)▶ 6편 규원사
오리지널(Original:원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단군문화는 유교, 불교, 도교 등 외래 종교와 혼합된 상태다. 따라서 남아있는 흔적에서 홍익유산을 가늠할 뿐이다.지난 5일 전라북도 고창군 고인돌 유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이 있었다. 이름이 독특했다. 방장산(方丈山, 743m)이다. 주민들은 고창의 주산(主山)이고 영산(靈山)이라고 부른
홍익인간이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으로 결정되기까지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1945년 미 군정의 위촉으로 교육계와 학계의 권위자 100여 명을 초청하여 조선교육심의회가 조직되었다. 교육이념·교육제도·교육행정·초·중등교육·직업교육·사범교육·고등교육·교과서·의학교육 등의 10개 분과위원회를 두어 각 분과로 하여금 학무국에서 마련한 여러 가지 의제를
8월은 광복의 달이다. 광복이란 말도 어려운 단어지만 실지로 광복을 이루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1945년을 광복의 해라면 올해로 69년이 된다. 그러니 나이만 들었지 철이 안 든 상태에 있는 것이다.인생도 70이라면 고희인데 우리는 광복이 개천인지 개국인지 아니면 개벽인지 모르고 고희가 되었다. 그냥 나이만 들고 철이 안 든 사람을 노인이라 한다. 노인이
1932년 7월 소설가 현진건은 묘향산에 있는 단군굴을 찾는다. 단군 위패 앞에 무릎을 꿇는다. 위대한 문화유업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한 후손으로서 몸 둘 바를 모른다.그는 “무슨 낯으로, 무슨 주제로 여기 올 생각을 하였던고?”라고 자책하며 “하도 기막히고 답답해서 집안 어른을 뵈러 온 것이다. 한배님을 찾아온 것”이라고 고백한다.이어 대성산(大聖山)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