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룬 덕수궁의 돌담길을 따라 정동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고종의 길’이라 부른다.1894년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주동으로 국모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그 이후 철군하지 않고 경성에 머무는 일본군과 친일 개화파의 이중 감시망 속에 사실상 궁궐에 감금된 상태였던 고종은 다음 해인 1896년 2월 11일 새벽 왕세자와 함께 당시 주한 러시아공사관까지 이어진 120m의 길을 따라 피신했다.고종의 길은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부르는 사건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당시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을
조선 23대 왕 순조의 둘째 딸 복온공주의 혼례복 위에 수놓은 모란은 부귀영화의 상징이었다. 모란도 병풍을 비롯해 궁궐의 그릇, 가구, 의복, 그리고 제사에 사용하는 의례에도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모란이 사랑받았다.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동영)은 7월 7일부터 10월 31일까지 모란꽃을 매개로 조선왕실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 ‘안녕, 모란’을 개최한다. 총 120여 점의 유물을 대거 공개하며, 모란이 수놓인 혼례복 중 창덕궁 왕실혼례복은 최초 공개이다.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것은 올봄 창덕궁 낙선재의 계단신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대한제국기 황실 의례와 의물』(이욱 외 지음, 16,000원)을 발간했다.이 책은 한중연 왕실문헌연구실이 주관하는 장서각 자료 연구의 결과물이다. 한중연은 장서각의 세계화 대중화라는 목표 아래, 조선왕실도서관인 장서각 자료를 꾸준히 연구하여 연구자와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로 발간한다. 의례는 꾸밈에 기초한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 예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외면을 통해 내면을 가꾸는 것이 의례이다. 『대한제국기 황실 의례와 의물』은 의례를 구성하는 물질적
고려시대 수도 개경의 궁성 ‘만월대’ 남북공동조사 12년의 성과를 공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고려사학회와 공동으로 15일 고려대학교 국제관에서 ‘고려 도성 개경 궁성 만월대’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또한 지난 8일부터 28일까지 덕수궁 선원전 터에서는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전시가 연계하여 진행 중이다.남북은 지난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총 8차에 걸쳐 황해북도 개성시 송악동 일원에 위치한 개성 만월대를 공동조사 했다. 이를 통해 왕실의 제사공간인 경령전, 정무공간인 건덕
조선시대 역대 왕 또는 왕으로 추존된 이들의 생모로, 왕비가 아닌 후궁 일곱 분의 신위를 모신 사당 ‘칠궁’을 따라 전문해설사의 역사해설을 듣는 특별 답사가 진행된다. 그동안 칠궁은 크게 알려지지 않다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시범개방 후 올해 1월부터 개방되었다.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오는 16일과 17일, 23일과 24일 도보답사와 역사, 인물에 관한 특별해설을 듣는 ‘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이야기’특별답사를 운영한다.칠궁은 원래 조선 21대 왕인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를 위해 세운 육상궁毓祥宮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선조의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오는 8일부터 28일까지 덕수궁 선원전터에서 개성 만월드 남북공동발굴조사의 12년 성과를 공개하는 전시회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을 개최한다.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고려 황궁 만월대는 고려황제와 왕조를 상징하는 정궁(正宮)으로, 470여 년간 지속되다가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북한국보유적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만월대를 포함한 개성역사유적지구는 2013년 제3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올해는 918년 고려 건국 이후 개성을 ‘개경’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서울지방보훈청이 후원하는 현충시설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을 매주 실시한다. 그 세 번째 탐방지는 장충단 호국의 길에 있는 현충시설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1일 학생과 학부모 120여명이 탐방에 참가해 장충단의 역사를 직접 찾아갔다.장충단은 충(忠)을 장려하는 제단이라는 뜻으로 고종황제가 1900년에 세운 우리 민족 최초의 현충시설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때 일본 낭인들에게 항거하다가 전사한 훈련대장 홍계훈과 장병들을 위한 사당을 건립하였고 이후 궁내부대신 이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 다음해 고종황제는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변위협을 느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해 약 1년 간 거처했다. 이를 아관파천이라 한다. 122년 전 고종이 세자와 함께 다른 나라 공사관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던 통탄의 길이 시민에게 개방된다.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광복73주년, 경술국치 108주년을 맞아 3년간 복원 공사를 마무리한 ‘고종의 길’을 10월 정식 개방하기 전 8월 한 달간 국민에게 시범 개방한다. 고종의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을 지나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 길이
덕수궁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경술국치인 1910년까지 13년간 대한제국의 궁궐로 사용한 곳으로, 당시에는 중명전과 옛 경기여고가 있던 자리까지 포함된 넓은 궁역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이 승하한 후 덕수궁의 궁역이 여러 이유로 잘려나가고, 궁궐의 전각들은 훼철(毁撤)되었다. 1920년대에는 현재의 덕수궁과 미국대사관 사이에 담장 길을 조성하여 덕수궁이 둘로 쪼개지고, 조선왕조의 근원인 선원전 영역은 총독의 손에 넘어가 조선저축은행 등에 매각되고, 선원전은 헐려 창덕궁으로 옮겨졌다. 또한, 덕수궁 중심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최종덕)은 오는 8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조선 왕실의 어진(御眞)과 진전(眞殿)’ 특별전을 개최한다. 어진(御眞)은 왕의 초상화, 진전(眞殿)은 왕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의례를 행하는 건물을 말한다. 조선 왕실 어진은 1954년 피난지인 부산의 보관창고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어 없어지고 그 중 극히 일부의 어진만 손상된 채로 남아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남아 있는 어진 보존처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주요 어진들을 한자리에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