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낙성대공원 광장의 강감찬 장군 동상. 사진 강나리 기자. 1천 년 전 고려는 해동성국 발해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제압하던 거란과 26년 전쟁 중이었다. 최근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성난 거란의 기세를 꺾고 몽골과의 전쟁 전까지 200년간 평화의 기틀을 닦아 백성들의 오랜 칭송을 받은 강감찬 장군의 눈부신 활약을 조명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가면 장군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장군이 태어난 집터와 영정을 모신 사당 안국사를 중심으로 조성된 낙성대공원, 장군의 시호인 인헌과 어릴 때 이름인 은천을 따른 학교들(인헌초‧중‧고, 은천초)이 있다. 2008년 이후 행정동으로 인헌동, 은천동, 낙성대동을 사용하고 있다. 난곡동에 가면 강감찬 장군이 지나다 지팡이를 꽂은 것이 나무가 되었다는 1000년 수령의 굴참나무도 있어 매년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낸다. 낙성대공원 강감찬장군 사당인 안국사에 장군의 탄생설화가 그려진 벽화. 사진 강나리 기자.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에 얽힌 장군의 탄생 설화는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한다. 《고려사》에 “어떤 사신(使臣)이 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오다가 큰 별이 인가(人家)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관리를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마침 그 집의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사신이 기이하게 여기고는 데리고 개경으로 돌아와 길렀는데 이 사람이 바로 강감찬이다”라고 기록했다. 강감찬 장군과 별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고려 문인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는 장군이 재상으로 있을 때 송나라 사신이 “하늘에서 문곡성(文曲星,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 학문을 관장하는 별)이 사라진 지 오래되어 그 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강공이 바로 문곡성”이라며 예찬했다고 전한다. 당시 거란과의 전쟁에서 번번이 패하여 엄청난 배상을 하며 어려움을 겪던 송나라 입장에서 강감찬 장군은 신화적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강감찬장군 생가터와 낙성대공원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400m가 채 안 되는 주택가 안쪽에 장군의 일화가 벽에 그려진 낮은 담장을 지나 장군의 생가터가 나온다. 장군이 태어날 때 큰 별이 떨어졌다는 곳이라 기록된 유허비만 서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이곳에는 장군과 더불어 태어났다는 나이 많은 향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1996년 안타깝게 생을 마치고 대신 150년 된 젊은 향나무가 그 터를 지키고 있다. 강감찬 장군 생가터 근처 주택가 낮은 담장에 그려진 강감찬 장군 벽화. 사진 강나리 기자. 지난 9일 방문한 강감찬장군 생가터. 역사 강사와 함께 인물과 유적을 찾아온 탐방객들이 유허비를 둘러싸고 장군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생가터에서 다시 길을 나서 500m정도 거리에 낙성대공원이 나온다. 광장에는 강감찬 장군이 힘찬 기세로 말을 달리는 형상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고, 홍살문을 지나면 ‘안국문’현판이 걸린 외삼문, 그 안에 고려의 백성이 장군을 기려 세웠다는 3층 석탑과 강감찬장군사적비가 좌우에 놓였다. 낙성대공원 내 강감찬 장군의 사당 안국사의 외삼문인 '안국문'. 사진 강나리 기자. 장군의 생가터에 자리했던 사리탑 형태의 화강암 삼층석탑은 1973년 낙성대공원이 조성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석탑의 앞면에 ‘강감찬 낙성대 姜邯贊 落星垈’라 새겨져 장군의 출생지임을 나타낸다. 13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탑꼭대기 세워 놓은 장식 부분인 상륜부가 훼손되어 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집터에 서 있던 사리탑형식의 3층 석탑. 사진 강나리 기자. 고려 백성이 강감찬 장군을 기려 세웠다는 석탑 가운데에 '강감찬 낙성대'라는 글귀가 새겨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다시 내삼문을 지나 약간 경사진 정원을 따라 3층 계단을 오르면 장군의 영정과 일생르 그린 벽화가 있는 사당 안국사가 있다. 안국사는 고려시대 목조 건축을 대표하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본떠 세웠는데 팔작 청기와 지붕이 올려져 웅장한 느낌을 준다.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안국사. 사진 강나리 기자. 이곳 안국문 기둥과 안국사 사당의 기둥은 위보다 중간이 굵고 불룩한 곡선을 이루는 특징을 나타낸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듯 하다. 외삼문인 안국문 기둥(왼쪽)과 사당인 안국사 기둥. 사진 강나리 기자. 낙성대공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관광지가 되지 않고 주민의 삶 속에 녹아들어 산책로이자 쉼터로 역할을 하고 있다. 쌀쌀해도 바람결에 봄을 느낄 수 있는 계절에 산책 나온 주민과 아이들이 외삼문 앞 공간에서 투호 등 전통놀이를 체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광장 주변으로는 강감찬전시관과 영상실, 북카페가 있고, 낙성대 유아숲체험원, 반려견놀이터, 낙성대 텃밭이 있고 서울 둘레길과 연결된다. 낙성대공원 주변은 관악산과 이어져 유아숲체험장 등이 조성되어 있고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쉼터로 이용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낙성대 곳곳에는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설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해 어린 원님으로 부임한 젊은 시절 백성을 괴롭히는 호랑이, 개구리, 탐관오리 등을 물리친 이야기들이다. 백성들이 장군에게 열망하던 초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고려사》 열전에 전한 강감찬 장군은 인생의 말년이라 부르는 나이에 가슴에 품은 꿈을 펼치고 나라를 구한 대기만성형의 인물이다. 36세인 고려 성종 2년(983년) 과거에 급제하여 26년 뒤 62세에 예부시랑이 되어 과거시험을 출제하는 지공거 역할을 했다. 실제 장군의 활약은 거란의 2차 침공이 있던 이듬해인 1010년 그의 나이 63세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사》 열전 중 강감찬 장군부분(왼쪽)과 《고려사》.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거란의 2차 침공을 기점으로 3차 침공 때인 1018년 72세 나이로 총사령관인 상원수가 되어 강민첨, 김종현 등 장수들과 함께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펼쳐 흥화진 전투와 귀주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거란의 명장 소배압이 10만 명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으나 장군은 거란군을 끝까지 추격해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뿐이었고, 이후 거란이 다시는 고려를 넘볼 수 없게 했다. 특히, 그는 왕과 백성에게 사랑받는 영웅이었다. 거란 2차 침공 때 항복 대신 그가 홀로 왕의 몽진을 주장해 지연 작전으로 거란을 물리친 후 현종은 “강공의 계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온 나라가 모두 좌임인左袵人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좌임은 오른쪽 섶을 왼쪽 섶 위로 여미는 북방 민족의 의복 방식으로 야만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총사령관으로 3차 침공을 승리로 이끈 후에는 현종이 직접 영파역까지 나와 잔치를 열고 금으로 만든 꽃 8가지를 장군의 머리에 꽂아주며 술잔을 권하고 위로와 감탄을 전했다. 또한, 영파역을 ‘의義가 흥한 곳’이라하여 흥의역으로 바꾸고, 역의 관리들에게 관복을 하사하는 등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당시 풍년이 들고 백성이 안정되어 나라 안팎이 평안하니, 사람들은 그 모두가 강감찬의 공이라고 생각하였다”고 기록했다. 안국사 내 강감찬 장군의 영정. 사진 강나리 기자. 전쟁영웅이라는 것만이 오랜 세월 장군이 사랑받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고려사》에 장군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 “성품이 청렴하고 검약하여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았다.(중략) 의복은 더럽고 낡아서 보통 사람보다 낫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는 태조 왕건과 함께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 3,200여 명 중에서도 특별히 신흥사 공신당 벽에 초상을 그려 공적을 기린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강궁진의 아들이었으나 36세에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올랐다. 또한, 그의 행적 중 “강감찬에게는 12결의 땅이 개령현에 있었는데, 왕에게 아뢰어 군호軍戶에게 공급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승리 후에도 장군은 관직이나 부귀영화를 쫓지 않았다. 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요청했으나 현종은 수차례 만류하며 궤장(机杖, 팔걸이있는 의자와 지팡이)을 하사하고 사흘에 한 번만 조회에 나오도록 하는 등 배려를 하다가 73세에 사직을 허락했다. 이후에도 국가원로로서 역할을 요청했고, 현종 21년 (1030)년에 그의 나이 83세에 문하시중에 임명해 그를 존중했다. 안국사 내 벽면에는 강감찬 장군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한편, 그는 무관 출신이 아니라 문관으로서 관직에 올랐다. 거란과의 3차 전쟁 당시에도 뛰어난 전투력이 아니라 정확하게 전황을 파악하고 적을 제압할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여러 장군을 적시에 투입하고 연합해 승리했다. 이는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고려를 전쟁의 화마에서 구하고 적이 넘보지 못할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고민하면서 생을 보낸 결과일 것이다. 또한, 권력이나 명예, 부귀와 같은 사사로운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 고려와 고려의 백성을 위한 공심公心으로 평생을 보낸 장군의 행보는 나랏일을 한다고 나서는 이들의 귀감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해 사명을 이루어낸 강감찬 장군은 인생을 사는 지혜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혼자서도 온라인으로 국가유산을 찾아보고 배울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잇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지난 2019년 출시한 자기주도 학습 전통예술 교육교재 ‘우리앙상블’의 업데이트 버전을 오는 12월 공개한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연구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연구기록물 200선을 초·중·고등 학습 자료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문화유산 지식e음 누리집에 공개한다.내 방에서 국악 합주연습, ‘우리앙상블’ 앱 리뉴얼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2019년 출시한 자기주도 학습 전통예술 교육교재 ‘우리앙상블’의 사용자 개
짧은 시간 하늘에서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폭우피해는 문화재도 피하지 못했다. 집중호우가 발생한 지역 중심으로 국가유산이 침수되고 석축과 담장, 대문채가 붕괴되거나 천연기념물 나무가 쓰러지고, 토사가 유실되었다.문화재청은 17일 기준 전국에서 국보 1건와 보물 2건, 사적 19건, 천연기념물 6건, 명승 5건, 국가민속문화재 5건, 등록문화재 2건 총 40건의 피해가 집계되었다고 밝혔다.가장 피해가 많은 지역은 경북으로 12건이 발생했다. 국보인 영주 부석사 조사당의 경우 주차장과 진입로에 토사가 유입되고, 조사당 옆 취현암 주변 토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제작 및 유통 지원을 통해 국내외 시장 공략을 위한 본격적인 정책이 추진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특화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공모를 통해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 27개 작품을 선정했다. 문체부는 또 국내 OTT 콘텐츠의 유통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40억 원 규모의 ‘국내 OTT 라이브러리 강화 후반작업 지원사업’을 올해 새롭게 시작한다. 문체부는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3월 2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디지털미디어 신기술로 융합된 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가 잇따라 공개돼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국립대구박물관은 2월 21일부터 미디어타워 및 디지털아트존의 콘텐츠를 새롭게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월 15일 콘텐츠의 새로운 시리즈인 익산 문화유산 편을 공개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의 대표 문화유산을 소재로 제작한 신기술융합콘텐츠 를 2월 10일 새롭게 공개했다. 국립대구박물관 신기술융합콘텐츠 공개국립대구박물관은 2월 21일부터 미디어타워 및 디지털아트존의 콘텐츠를
계묘년 새해 첫해를 어디에서 맞이할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강릉 정동진, 울산 간절곳, 포항 호미곶 외에도 해맞이를 하고 찬란한 빛으로 저물어가는 일몰을 볼 수 있는 명소는 산재해 있다.한국관광공사는 19일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 특집관을 통해 새해를 맞이하는 일출‧일몰 명소를 비롯해 새해 다짐과 목표를 세울 ‘전국의 소원 명소’, ‘ 친구와 함께 즐기기 좋은 ‘떡국먹고 후식타임! 디저트 맛집’, 연휴기간 피로를 풀 수 있는 ‘따끈따끈 온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했다. 그중 일출‧일몰 명소와 전국 소원 명
2. 마고삼신 계통1) 마고삼신 1인·3인 유형무속화 중에서 마고삼신 유형은 여성 1인이 표현된 마고삼신 1인 유형과 여성 3인이 그려진 마고삼신 3인 유형이 있다. 여신이 들고 있는 부채에 삼불제석이 그려져 있거나, 들고 있는 꽃이 한 송이나 세 송이인 것, 손에 받쳐 든 복숭아가 3개인 것 등은 모두 1기ㆍ3기(하느님ㆍ삼신)의 표상이 변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고삼신 1인·3인 유형 사례 의 경우는 ʻ대신(大神)할머니ʼ라고 불리며 무조신(巫祖神)으로 흔히 알고 있지만 동북아 선도제천문화의 기준으로 볼 때
4) 장승 유형(1) 월천리 환웅 석장승과 왕검 석장승전북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환웅 석장승과 왕검 석장승은 17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석장승에 인상을 새기고 구체적 신격의 이름을 밝힌 사례이다. 선인계 법수 장승의 매우 희귀한 경우로 민속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단군 신앙을 표방한 대종교가 수립되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때, 삼성에 대한 신앙은 적어도 17세기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ʻ환웅ʼ과 ʻ왕검ʼ이 신체에 적시되어 있어 삼성 계통으로 볼 수 있다. 삼성 계통 장승 유형이상에서 한국 마을제
단풍이 들기 전 다양한 초록빛이 가득한 가을 산은 여행자의 발길을 사로잡는다.강원도 치악산 구룡사 계곡을 찾아가는 길, 고요한 학곡저수지에는 새들과 고추잠자리가 노닐고 맑은 물 위로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담겼다.학곡저수지에서 5km 거리에 원주 8경 중 제1경이라는 천년 고찰 구룡사(龜龍寺)로 향하는 구룡계곡이 있다. 마치 폭포인 양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황장목 숲길을 걸으면 누대 위에 세워진 구룡사를 마주할 수 있다. 황장목은 나무 중심부분이 누런색을 띄는 단단한 재질의 좋은 소나무로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다고 한다.구룡사
Ⅲ. 한국 마을제의 양대 신격 : 마고삼신-삼성 계통1. 마고삼신 계통2. 삼성 계통한국 마을제의 수많은 제의시설 중에는 앞에서 살폈듯이 할머니신들도 많지만 할아버지신도 많다. 필자는 동북아 선도제천문화 전통에서 볼 때 할아버지신의 원형을 삼성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마을제의 시설 중에 나타난 신격이 삼성(환웅·단군)·산신·서낭으로 선명하게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고찰한다. 동북아 선도제천문화의 원형적인 신격인 마고삼신이 후대로 오면서 삼성으로, 다시 산신으로 전화되어 갔고 이것은 산왕에서 선왕의 전음 과정을 거쳐 서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