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우주의 물방울〉(작 김성민, 연출 임후성)은 극단 피오르의 ‘인간 존재론’을 주제로 한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실존의 맹목성, 사랑, 우주’란 키워드로 세계 내 우리 존재를 탐구하고 조망한다.〈우주의 물방울〉은 제9회 신작희곡페스티벌(한예종, 한국연극연출가협회)에 당선된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5년 창작산실연극우수작품지원에 선정되었다.2024년 5월엔 서울연극제 자유경연참가작으로 5월 8일부터 19일까지 나온씨어터 (서울 종로구 혜화로9길7)에서 관객과 만난다.연극배우였던 일봉은 이제 변두리 룸살롱 반주자로
정혜신 작가는 배달 후 폐기된 택배상자로 작업을 한다. 대면 접촉을 두려워하던 지난날, 우리 배달이라는 ‘비접촉’ 서비스에 의존하였다. 어느 날 어느 순간 이름 모를 택배기사가 집 앞에 놓고 간 박스가 쌓이는 풍경은 일상이 되었고, ‘전달’이라는 목적을 다한 택배상자는 폐기되었다.정혜신 작가는 기능을 상실한 상자를 가져와 무작위적인 이미지를 붙인 뒤 글루로 덮음으로써 전시장에 또 다른 이야기를 담은 것들을 들여왔다. 흩어져 있는 상자들은 무대장치처럼 관람객들을 등장인물로 병치하여 이 낯선 풍경을 완성한다.지난 3월 23일 영은미술관
생이 아름다운 극단이 2024년 첫 작품으로 오는 4월 24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 코델 아트홀 무대에 올리는 신작 연극 (작/연출 김서휘)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 한 명인 에우리피데스의 에서 영감받아 창작한 작품이다.‘상실과 용서를 통한 치유와 성장’으로, 죄책감과 상실감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용서를 통해 개인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미지의 공간, 다크와 문은 무언가를 찾는 막연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이 공간은 생전의 미련과 아픔을 해소해 주는 곳으로 레아와
맨발로 땅바닥을 밟는 것은 욕구와 탐닉에 빠진 물질사회에서 벗어나 무한한 에너지 통로인 자연과의 연결이다. 사진 김경아 기자. 최근 SNS 상에서 ‘도파민 중독’, ‘도파민 디톡스’, ‘도파민형 인간’ 등 도파민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화제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반 대중에게도 뇌에 관한 정보와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로서 도파민과 맨발걷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도파민에 대한 관심이 있기 이전에 2010년대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세로토닌’입니다. 당시 이시형 박사의 〈세로토닌 하라〉라는 책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죠. 세로토닌과 도파민은 신경전달물질의 국가 대표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데요.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으로 유명합니다. 평온함과 충만한 느낌을 준다고 하죠. 그에 반해 도파민은 흥분성 호르몬에 해당하는데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의지를 내서 이루고자 할 때 나오는 호르몬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뭔가 우울하고 힘이 없는 경우는 도파민이 부족한 상태죠. 그래서 도파민 호르몬 자체가 좋고 나쁜 게 아니라 적절하게 상황에 맞게 분비가 되어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도파민 중독’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현대 사회가 자극과 탐닉에 너무나도 쉽게 빠져 있고 도파민이 너무나 쉽게 분비되고 있다는 볼 수 있습니다. 도파민과 함께 따라나오는 단어는 바로 ‘보상’입니다. 보상이 올 때 뇌에서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쉽게 보상이 주어지는 SNS와 사회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면 엄청난 희열감이 느껴집니다. 도파민이 엄청나게 분출됩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정당한 노력 없이 몇천 원의 로또를 샀을 뿐인데 엄청나게 큰 금액이 돌아오는 보상이 따라온 거죠. 그러면 뇌에서는 보상 회로가 망가지고 도파민을 느낄 수 있는 베이스라인인 ‘역치’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후로 어떤 것을 이루어도 쉽게 즐거움이나 희열감을 느끼지 못하죠. 한마디로 작은 것에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의 70% 이상은 불행한 삶을 산다는 것이 그런 뇌의 작용과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도파민 시스템의 교란 사회에서 자신의 도파민 베이스라인, 즉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뇌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뇌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은 바로 조절(Coordinating 코디네이팅)입니다. 체온이 낮아지면 스스로 진동(떨림)을 일으켜 체온을 올리고, 체내 수분이 부족하면 갈증을 일으켜 수분을 섭취하게 하는 등, 생존에 필요한 모든 작용과 명령은 결국 뇌에서 주관합니다. 황톳길에서 맨발걷기 명상을 하는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박용준. 사진 김경아 기자. 그렇다면 이렇게 항상성의 교란이 일어난 상황에서 그 영점(제로 포인트)를 잡게 하는 것 또한 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겠죠. 자신의 항상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 답은 바로 뇌의 진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가장 오랜 시간 진화의 과정에서 익숙해져 있는 시스템. 바로 ‘자연과의 만남’이죠. 인류는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그리고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왔습니다. 그 시간 중 인간의 몸이 가장 긴 시간 익숙해져 있는 시스템은 ‘수렵사회’에서의 생활입니다. 즉, 맨발로 생활하는 것이 인간의 몸에 익숙하다고 볼 수 있죠. 산업사회를 거쳐 땅바닥과 절연된 신발을 신고 생활하며 자연과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맨발로 땅바닥을 밟는 것은 욕구와 탐닉에 빠진 물질사회에서 벗어나 무한한 에너지 통로인 자연과의 연결입니다. 현대 사회의 끊임없는 욕구와 욕망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수면 부족, 두통, 우울증, 불안감 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바깥쪽 뇌(대뇌피질과 대뇌변연계)의 문제라기보다는 뇌의 안쪽 생명 중추의 기제가 흔들린 상태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증세를 통틀어서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이야기하죠. 이렇게 자율신경의 균형이 무너지고 뇌의 감각이 상실된 사회에서 맨발걷기를 통해 몸의 감각, 특히 발바닥의 감각을 깨울 때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뇌의 감각(내수용성감각, 고유수용감각)이 깨어나게 됩니다. 이 때가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안정된 상태입니다. 발바닥에는 말초신경 중에서도 부교감신경이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발바닥을 자극할 때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며 교감신경 항진에 따른 다양한 질환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첫 번째 칼럼에서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도파민에 지배받는 ‘도파민 의존형 인간’에서 도파민을 충분히 즐기고 적절하게 활용하며 건강하고 윤택한 삶을 사는 뇌의 주인으로서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맨발걷기를 할 때, 그냥 걷기 운동하듯이 물리적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감각을 깨운다는 마음으로 자기 몸의 느낌에 온전히 주의집중을 하고 호흡을 느끼며 걷는 ‘맨발걷기 명상’이 필요합니다. 지난 2편에 소개한 맨발걷기 명상을 통해 자신의 뇌의 주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본 기사는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학과 장래혁 학과장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맨발걷기 6년 차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박용준입니다. 유튜브 '용준의 힐링라이프' 채널을 통해 맨발걷기와 브레인트레이닝에 대해서 알리고 있습니다. 브레인트레이닝 및 명상 트레이너 경력 11년이며, IBEL 국제 국학기공지도자와 명상 플랫폼 '라라쿨라' 트레이너로 활동 중입니다.
일본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青野文昭, 1968~)는 일상적인 오브제의 예술화 과정을 통해 사물이 지닌 고유의 시간성을 파헤치며 사물에 내재한 일상, 감정, 기억 등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복원한다.그는 1990년대부터 일관하여 ‘파괴’, ‘재생’, ‘순환’의 과정을 다루는 ‘복원(復原)’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아오노의 복원은 손상되기 이전의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즉 상처를 없애는 작업이 아니다. 빈 땅이나 해안 등에서 주워 온 폐기물의 파손된 파편에 고정, 연장, 붙이기 등의 기법을 적용하여 사물의 재생을 유도하는 복원이다. 가구나
인간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솔직하게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는 연극 〈클로저〉(제작 ㈜레드앤블루)가 국내에서 8년만에 다시 관객과 만난다.연극 는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앨리스, 댄, 안나, 래리라는 네 명의 남녀가 만나 서로의 삶에 얽혀가는 과정을 좇는 작품이다.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끝나는 과정에서 서로를 향해 품는 열망과 집착, 흔들리는 마음,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한다.오는 4월 서울 대학로 무대에 오르는 연극 는 구태의연한 고정관념을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시대와 발맞추어 새로운 변화를 여러
서울 관악구 낙성대공원 광장의 강감찬 장군 동상. 사진 강나리 기자. 1천 년 전 고려는 해동성국 발해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제압하던 거란과 26년 전쟁 중이었다. 최근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성난 거란의 기세를 꺾고 몽골과의 전쟁 전까지 200년간 평화의 기틀을 닦아 백성들의 오랜 칭송을 받은 강감찬 장군의 눈부신 활약을 조명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가면 장군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장군이 태어난 집터와 영정을 모신 사당 안국사를 중심으로 조성된 낙성대공원, 장군의 시호인 인헌과 어릴 때 이름인 은천을 따른 학교들(인헌초‧중‧고, 은천초)이 있다. 2008년 이후 행정동으로 인헌동, 은천동, 낙성대동을 사용하고 있다. 난곡동에 가면 강감찬 장군이 지나다 지팡이를 꽂은 것이 나무가 되었다는 1000년 수령의 굴참나무도 있어 매년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낸다. 낙성대공원 강감찬장군 사당인 안국사에 장군의 탄생설화가 그려진 벽화. 사진 강나리 기자.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에 얽힌 장군의 탄생 설화는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한다. 《고려사》에 “어떤 사신(使臣)이 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오다가 큰 별이 인가(人家)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관리를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마침 그 집의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사신이 기이하게 여기고는 데리고 개경으로 돌아와 길렀는데 이 사람이 바로 강감찬이다”라고 기록했다. 강감찬 장군과 별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고려 문인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는 장군이 재상으로 있을 때 송나라 사신이 “하늘에서 문곡성(文曲星,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 학문을 관장하는 별)이 사라진 지 오래되어 그 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강공이 바로 문곡성”이라며 예찬했다고 전한다. 당시 거란과의 전쟁에서 번번이 패하여 엄청난 배상을 하며 어려움을 겪던 송나라 입장에서 강감찬 장군은 신화적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강감찬장군 생가터와 낙성대공원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400m가 채 안 되는 주택가 안쪽에 장군의 일화가 벽에 그려진 낮은 담장을 지나 장군의 생가터가 나온다. 장군이 태어날 때 큰 별이 떨어졌다는 곳이라 기록된 유허비만 서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이곳에는 장군과 더불어 태어났다는 나이 많은 향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1996년 안타깝게 생을 마치고 대신 150년 된 젊은 향나무가 그 터를 지키고 있다. 강감찬 장군 생가터 근처 주택가 낮은 담장에 그려진 강감찬 장군 벽화. 사진 강나리 기자. 지난 9일 방문한 강감찬장군 생가터. 역사 강사와 함께 인물과 유적을 찾아온 탐방객들이 유허비를 둘러싸고 장군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생가터에서 다시 길을 나서 500m정도 거리에 낙성대공원이 나온다. 광장에는 강감찬 장군이 힘찬 기세로 말을 달리는 형상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고, 홍살문을 지나면 ‘안국문’현판이 걸린 외삼문, 그 안에 고려의 백성이 장군을 기려 세웠다는 3층 석탑과 강감찬장군사적비가 좌우에 놓였다. 낙성대공원 내 강감찬 장군의 사당 안국사의 외삼문인 '안국문'. 사진 강나리 기자. 장군의 생가터에 자리했던 사리탑 형태의 화강암 삼층석탑은 1973년 낙성대공원이 조성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석탑의 앞면에 ‘강감찬 낙성대 姜邯贊 落星垈’라 새겨져 장군의 출생지임을 나타낸다. 13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탑꼭대기 세워 놓은 장식 부분인 상륜부가 훼손되어 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집터에 서 있던 사리탑형식의 3층 석탑. 사진 강나리 기자. 고려 백성이 강감찬 장군을 기려 세웠다는 석탑 가운데에 '강감찬 낙성대'라는 글귀가 새겨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다시 내삼문을 지나 약간 경사진 정원을 따라 3층 계단을 오르면 장군의 영정과 일생르 그린 벽화가 있는 사당 안국사가 있다. 안국사는 고려시대 목조 건축을 대표하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본떠 세웠는데 팔작 청기와 지붕이 올려져 웅장한 느낌을 준다.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안국사. 사진 강나리 기자. 이곳 안국문 기둥과 안국사 사당의 기둥은 위보다 중간이 굵고 불룩한 곡선을 이루는 특징을 나타낸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듯 하다. 외삼문인 안국문 기둥(왼쪽)과 사당인 안국사 기둥. 사진 강나리 기자. 낙성대공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관광지가 되지 않고 주민의 삶 속에 녹아들어 산책로이자 쉼터로 역할을 하고 있다. 쌀쌀해도 바람결에 봄을 느낄 수 있는 계절에 산책 나온 주민과 아이들이 외삼문 앞 공간에서 투호 등 전통놀이를 체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광장 주변으로는 강감찬전시관과 영상실, 북카페가 있고, 낙성대 유아숲체험원, 반려견놀이터, 낙성대 텃밭이 있고 서울 둘레길과 연결된다. 낙성대공원 주변은 관악산과 이어져 유아숲체험장 등이 조성되어 있고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쉼터로 이용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낙성대 곳곳에는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설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해 어린 원님으로 부임한 젊은 시절 백성을 괴롭히는 호랑이, 개구리, 탐관오리 등을 물리친 이야기들이다. 백성들이 장군에게 열망하던 초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고려사》 열전에 전한 강감찬 장군은 인생의 말년이라 부르는 나이에 가슴에 품은 꿈을 펼치고 나라를 구한 대기만성형의 인물이다. 36세인 고려 성종 2년(983년) 과거에 급제하여 26년 뒤 62세에 예부시랑이 되어 과거시험을 출제하는 지공거 역할을 했다. 실제 장군의 활약은 거란의 2차 침공이 있던 이듬해인 1010년 그의 나이 63세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사》 열전 중 강감찬 장군부분(왼쪽)과 《고려사》.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거란의 2차 침공을 기점으로 3차 침공 때인 1018년 72세 나이로 총사령관인 상원수가 되어 강민첨, 김종현 등 장수들과 함께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펼쳐 흥화진 전투와 귀주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거란의 명장 소배압이 10만 명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으나 장군은 거란군을 끝까지 추격해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뿐이었고, 이후 거란이 다시는 고려를 넘볼 수 없게 했다. 특히, 그는 왕과 백성에게 사랑받는 영웅이었다. 거란 2차 침공 때 항복 대신 그가 홀로 왕의 몽진을 주장해 지연 작전으로 거란을 물리친 후 현종은 “강공의 계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온 나라가 모두 좌임인左袵人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좌임은 오른쪽 섶을 왼쪽 섶 위로 여미는 북방 민족의 의복 방식으로 야만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총사령관으로 3차 침공을 승리로 이끈 후에는 현종이 직접 영파역까지 나와 잔치를 열고 금으로 만든 꽃 8가지를 장군의 머리에 꽂아주며 술잔을 권하고 위로와 감탄을 전했다. 또한, 영파역을 ‘의義가 흥한 곳’이라하여 흥의역으로 바꾸고, 역의 관리들에게 관복을 하사하는 등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당시 풍년이 들고 백성이 안정되어 나라 안팎이 평안하니, 사람들은 그 모두가 강감찬의 공이라고 생각하였다”고 기록했다. 안국사 내 강감찬 장군의 영정. 사진 강나리 기자. 전쟁영웅이라는 것만이 오랜 세월 장군이 사랑받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고려사》에 장군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 “성품이 청렴하고 검약하여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았다.(중략) 의복은 더럽고 낡아서 보통 사람보다 낫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는 태조 왕건과 함께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 3,200여 명 중에서도 특별히 신흥사 공신당 벽에 초상을 그려 공적을 기린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강궁진의 아들이었으나 36세에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올랐다. 또한, 그의 행적 중 “강감찬에게는 12결의 땅이 개령현에 있었는데, 왕에게 아뢰어 군호軍戶에게 공급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승리 후에도 장군은 관직이나 부귀영화를 쫓지 않았다. 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요청했으나 현종은 수차례 만류하며 궤장(机杖, 팔걸이있는 의자와 지팡이)을 하사하고 사흘에 한 번만 조회에 나오도록 하는 등 배려를 하다가 73세에 사직을 허락했다. 이후에도 국가원로로서 역할을 요청했고, 현종 21년 (1030)년에 그의 나이 83세에 문하시중에 임명해 그를 존중했다. 안국사 내 벽면에는 강감찬 장군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한편, 그는 무관 출신이 아니라 문관으로서 관직에 올랐다. 거란과의 3차 전쟁 당시에도 뛰어난 전투력이 아니라 정확하게 전황을 파악하고 적을 제압할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여러 장군을 적시에 투입하고 연합해 승리했다. 이는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고려를 전쟁의 화마에서 구하고 적이 넘보지 못할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고민하면서 생을 보낸 결과일 것이다. 또한, 권력이나 명예, 부귀와 같은 사사로운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 고려와 고려의 백성을 위한 공심公心으로 평생을 보낸 장군의 행보는 나랏일을 한다고 나서는 이들의 귀감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해 사명을 이루어낸 강감찬 장군은 인생을 사는 지혜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쾨닉 서울(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412)은 4월 12일(금)까지 장잉난(Zhang Yingnan) 개인전 《MELTING》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되는 신작 11점은 장잉난의 회화적 특징인 인간의 형체가 제거된 실내 건축 공간에 대한 사실적 화화 기법을 엿볼 수 있다. 본 전시 속 작품들은 고전적인 우아함을 가득 담고 있으며 엄격하고 조리 있고 차분하다. 의 차가운 파란 빙하 안으로 비치는 따뜻한 황금빛 햇살, 의 어두운 조용한 파란색 유리문이 흰 빛의 미래를 드러내는 모습, 그리고
슈페리어갤러리(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28)는 3월 12일(화)~4월 2일(화)까지 한승훈 작가의 개인전 《20 Episodes of her》를 개최한다. 한승훈 작가는 무표정한 '그녀'의 형체를 통해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여정을 표현한다. 캔버스 안의 그녀의 초상은 작가의 자아와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한다. 전쟁과 기후 위기 등의 불안 속에서 늘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회피와 자아를 상실한 모습을 그려내어 우리의 감정을 돌아보게 한다. 피부 톤과 머리 컬러, 옷의 질감과 배경의 효과는 계산된 조화로움 속에서 현대 사회의 소비문화를
100년 전 고(古)음반에 기록된 우리 국악을 직접 들어보고 그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껴볼 수 있는 이색 전시가 마련됐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국립국악원이 오는 3월 5일부터 4월 7일까지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5관에서 ‘최고의 소리반 : 신춘에는 엇든 노래 유행할가’ 전시를 개최한다. ‘우리의 옛 소리를 담은 유성기 음반’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간 국립국악원이 수집한 유성기 음반 100여 점과 가사지, 사진, 신문기사 등 관련 자료를 선보이며 고(古)음반에 고스란히 담긴 국악의 예술 및 문화적 가치를 소개한다. 국립국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