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이 작업을 통해 내 지식이 점차 확장된다는 성취감을 느꼈고, 읽고 곱씹으면서 평소에 내가 모자란 부분이 많다는 것을 반성하게 됐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채워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약 9개월 동안 동서양의 인문고전 20권을 읽고 이를 해설한 책을 펴낸 부산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 재학 중인 신명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신명 군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인문고전 읽기와 사색에 도전했다. 아버지가 추천한 책에서 인문고전은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고 그 뜻을 깊게 사색해야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자극을 받았던
이번에 선정한 책은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 1883~1955)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대중의 반역》이다. 이 책은 20세기 대중사회를 예견한 문명해석서로 유명하다. 1929년부터 일간지 《태양 El Sol 》에 기고한 글을 모아 1930년 단행본으로 엮어 간행한 것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20세기초 서구 유럽에 만연한 전체주의 물결 속에서 대중지배의 야만성을 간파하고 진정한 자유, 보수란 무엇인지를 묻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여 펴낸 것으로 이는 최초의 대중사회론이다. 《대중의 반역》의 발간 전후로 당시 유럽은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1922년에는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정권이 탄생하였다. 독일에서도 나치가 세력을 확대하고 있던 시기로 파시즘이 유럽을 점점 뒤덮고 있었다. 게다가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모국 스페인은 왕정국가였지만, 1923년부터 군사독재정권이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최대의 위기에 처한 유럽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출처=역사비평사 이 책으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세계적인 서구 문명 해설자들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월간지 《Atlantic Monthly》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9세기를 대변하고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9세기를 대변한다면,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이 20세기를 대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황보영조 옮김, 《대중의 반역》, 역사비평사, 2015). 이러한 명저를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가며 상세히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한 읽기를 하려고 한다. 《대중의 반역》의 저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1883년 5월 9일 스페인왕국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라는 이름은 스페인어권의 인명(人名)관습에 따른 것으로 제1성인 오르테가는 아버지의 성, 제2성인 가세트는 어머니의 성이다. 아버지 호세 오르테가 무니야(José Ortega Munilla, 1856~1922년)는 저명한 언론인으로 당시 유력지였던 엘 임빠르시알(El Imparcial)을 경영하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이 신문을 창간한 사주의 딸이었다. 오르테가는 자신은 윤전기 위에서 태어났다고 했는데, 실은 그가 태어난 방 아래층에 윤전기가 있었다. 하지만 오르테가는 많은 글을 신문지상에 발표하여 신문은 오르테가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드리드 대학에서 공부한 오르테가는 1902년 19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1904년 마드리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05년부터 1907년까지 독일로 유학하여 베를린대학, 라이프치히대학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하였다. 특히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신칸트학파의 코헨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오르테가는 1910년 마드리드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 마드리드대학에서 그는 약 26년 동안 연구하며 자신의 철학을 확립하였다. 1914년 《돈키호테 성찰》을 발간하고, 1921년 《무척추의 스페인》을 펴냈다. 그리고 9년 후 1930년 《대중의 반역》을 출간했다. 《무척추의 스페인》은 당시 혼란 속에 있던 스페인의 상황을 분석한 것이고 이를 유럽으로 확대하여 유럽의 상황을 분석한 것이 《대중의 반역》이다. 오르테가는 왕정붕괴 직전에 지식인들으로 정치단체 ‘공화국봉사단’을 결성하고 1931년 스페인 제2공화정이 성립하자 제헌의회 의원이 되어 신헌법제정까지 의원으로 활동했다. 1932년 제헌의원을 사퇴하고 ‘공화국봉사집단’도 해산하였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오랜 망명생활 끝에 1945년 스페인으로 돌아와 마드리드 등에서 강연,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1955년 10월 18일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철학자이며 사상가이고 문명비평가이면서 사회철학자이다. 그는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지적인 영웅 세 사람(오르테가, 우나무노, 피카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오르테가의 사상은 조국인 스페인보다 국제적으로 더 명성을 떨쳤다. 토마스만,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등 위대한 작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카뮈는 오르테가에 매료되어 그를 “니체 이후 유럽 최고의 작가일 것”이라고 극찬했다(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신정환 옮김, 《돈키호테 성찰》, 을유문화사, 2018.)
[인성대통령을 기다린다]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1762년 발간한 《사회계약론》’에서 “영국국민은 자기네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출할 때뿐이다. 의원선출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노예가 되어 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고 했다.해방 후 60여 년 민주주의를 경험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인가? 고대 춘추전국 시대에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 나라의 목표였으니, 이를 유지하는 나라가 좋은 나라였다. 나라가 부유한데 이를 지킬 강한 군대가 있으니 아무 걱정이 없었다. 나라가 부유하고 군대가 강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백성이 많아야 한다. 위(魏)나라 양혜왕(梁惠王)의 고민도 그것이었다. “과인이 나라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