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월성 동쪽에 있는 얕은 구릉지인 낭산(狼山)과 그 주변에는 수백 여년에 걸쳐 조성된 신라의 사적(史蹟)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사적은 낭산이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박주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박사과정생은 동 대학원 국학연구원이 최근 펴낸 《선도문화》(제36권, 2024.2)에 게재한 논문 “'신유림(낭산)'의 선도제천문화와 그 성격 변화 과정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경주 낭산을 한국선도적 관점에서 고찰했다.이 연구에 따르면 "초기 낭산(신유림)은 신라의 대표적인 소도(蘇塗)로 나타나는데,
5) 남성 서낭 유형앞서 살핀 바와 같이 서낭의 어원이 산왕(山王)에서 선왕으로 전음되어 정착된 것이므로 서낭신은 산왕신(山王神) 곧 산신(山神)이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의미가 많이 축소되어 동구 밖에 있는 서낭당의 당신으로, 마을 수호신으로 인식되었다. 후대에는 말과 함께 있는 것으로 주로 표현이 되는 까닭에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안전을 비는 신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의미이고 원래는 단군조선이 거느리던 거수국(渠帥國)인 북방 민족이 주로 이용하던 이동 수단이자 전력(戰力)이 말이었기 때문에 예족의
Ⅳ. 한국무속화의 신격 중 마고삼신-삼성 계통1. 동북아 선도제천문화로 바라본 한국무속화의 신격앞서 한국 마을제에 나타난 남녀 신격인 할머니신, 할아버지신의 원형이 동북아 상고 제천문화의 원형적 신격인 마고삼신-삼성임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민속문화에 나타난 마고삼신-삼성이 무속문화 속에서도 그 흔적을 보이고 있어 본장에서는 무속화에 나타난 마고삼신-삼성 계통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속화에는 수많은 신격이 있지만 본고에서는 이를 모두 다 다루지 못하고 삼고삼신-삼성 계통에 한해 살펴보고자 한다.무속화가 모셔지는 곳은 대체로 세 곳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은 조선후기 불교 조직의 제도와 실천을 조망한 학술지 《Korea Journal》여름 특집호를 발간했다고 밝혔다.이번 《Korea Journal》은 지난 8월 15일부터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학술대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IABS)를 고려하여 기획·추진한 것으로,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김성은 교수가 특집 기획자로 참여했다. 순천대학교 이종수 교수의 “The Establishment of Buddhist Culti
Ⅳ. 제천신격의 변화로 본 선도제천문화의 민속·무속화(종교화)2. 신격 인식의 변화: 천신(생명신·창조신)→산신앞서 배달국 이래 선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제천의 신격적 중심이 서서히 ‘마고삼신→삼성→단군’으로 달라져갔고 이것이 선도제천문화가 민속·무속화(종교화)하는 주요 배경이었음을 살펴보았다. 본절에서는 유교례의 성행 속에서 마고삼신-삼성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천신(天神, 생명신·창조신)’에서 ‘산신(山神)’으로 달라져갔고 이것이 선도제천문화가 민속·무속화(종교화)해가는 또 다른 배경적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살펴보겠다.현재 한국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이 지난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으로 제출한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Stone Buddhas and Pagodas at Hwasun Unjusa Temple)이 최종 등재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총 16건의 유산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르게 되었다. 이번에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화순 운주
한국선도 연구의 본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천손문화연구회는 지난 6월 21일~22일, 2014년 상반기 정기답사의 일환으로 강원국학원과 함께 태백·강릉지역의 선도문화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태백·강릉 선도문화 탐방기를 7회에 걸쳐 싣는다.※ 강원국학원 · 천손문화연구회 태백·강릉 선도문화 탐방 기획기사[1편] 태백산을 오르며 - 태백산 당골
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하늘에 제사를 지내온 민족이다. 예맥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마한의 소도(蘇塗) 등이 모두 천제 의식이다. 우리 민족의 삶이고 구심점이 되었던 천제는 중심 정치세력의 정책에 따라 외래종교가 들어오면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고려 중기에 이르러 굿을 행하는 무당은 백정보다도 더 천하게 여겨 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