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시다 청년 시기에 순국한 송몽규(1995년 애국장)·안창남(2001년 애국장)·김필순(1997년 애족장) 선생을 "2023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송몽규, 안창남, 김필순 선생은 각각 인문학, 과학기술, 의학 분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으로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에서 자신들이 습득한 지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한 방법을 마련하는 데 헌신하였다.중국 용정 출생(1917년)의 송몽규 선생(윤동주 시인의 사촌형, 1995년 애국장)은 명동학교와 은진중학교에서 민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이듬 해인 1942년 임오년에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2개의 큰 사건이 있었다. 조선어학회사건과 임오교변(壬午敎變)이다.조선어학회사건은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들이 기차 안에서 우리 말로 대화하는 것을 경찰이 트집 잡아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교육한 교사 정태진을 체포한 데서 시작되었다. 1942년 10월 일제는 정태진이 관여하던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꾀했다고 하여 ‘조선어큰사전’을 준비 중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33인을 체포해 내란죄로 몰았다.그러나 조선어학회 사건의 결정적인 계기는 다른 것이었다.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위원장 이명우)는 10월 26일(월)부터 11월27일(금)까지 ‘이북도민 역사기록 사진전’을 지역을 순회하여 개최한다.먼저 10월 26일(월)~29일(목)에는 전북도청에서 사진전을 개최하며, 이어 순차로 11월 9일~12일 강원도 속초 시립박물관, 11월 16일~19일 부산시청, 11월 23일~26일 세종시청에서 각각 개최한다. "독립전쟁, 그 현장을 가다”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이번 사진전은 이북 출신인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하였고, 규암 김약연 선생의 증손자인 김재홍
임시정부 주석이던 석오 이동녕(1869~1940) 선생은 “우리 민족의 뿌리는 단군이다. 우리는 이 단군 왕검의 개국과 이어지는 전통을 이어 독립운동의 역사적 정신적 맥으로 삼아 지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개천절을 맞아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던 단군의 영정을 포함한 관련유물10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은 전시회가 눈길을 끈다.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수운회관 4층 대전시실에서 열린 ‘독립운동의 상징, 단군 영정 전시회’를 찾았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 9월 26일 시작되어 오는 1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를 만나러 용정으로 향한다. 윤동주생가를 가는 길에 용정에서 태어난 또 한명의 인물 한낙연을 기념하는 낙연공원에 들렀다. 조남호 교수의 해설이 있기 전까지 일행 중 누구도 한낙연이라는 분을 알지 못했다.1919년 3.1운동 당시 이곳 용정에서도 3월 13일 3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한낙연은 시위에 쓰일 현수막을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에 앞장섰다가 일본경찰의 지명수배를 받고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는 영국, 프랑스의 조계지로 서양문물이 들어오며 혁명가, 상인, 예술인들이 모
올해 광복절 70년 경축도 북한의 도발로 무색해졌습니다. 광복이 곧 분단의 역사이고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전역을 연기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군인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군복에 단 태극마크가 어느 때보다 빛나는
중국 역사 기행 5일째인 7월 19일 연길에서 출발하여 왕청(汪靑)으로 향했다. 서일(徐一, 1881∼1921) 총재가 군사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 십리평((十里坪), 덕원리를 답사한다.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연변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이경호 회장이 우리를 환송해주었다. 이 회장은 연변과 교류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연변의 중고등학생들
명동촌 초입에서 '명동, 윤동주생가'라는 글을 새긴 커다란 바위가 우리를 반겼다. 이 일대가 명동촌(明東村). 넓게는 명동지구라고하는 곳이다.조선 회령의 덕망 있는 한학자 규암(圭巖) 김약연( 金躍淵, 1868~1942)이 1899년 2월 문병규, 김하규, 남도천, 문치정 등과 함께 142명을 이끌고 이곳 명동일대로 이주하였다. 김약연은 일찍이 8세 때
7월18일 오전 6시 택시를 타고 연길시 인민공원 옆 시장(市場)으로 갔다. 이명학 국학운동시민연합 국장, 류경성 광주국학기공연합회장과 함께였다. 택시요금은 6위안. 내린 곳은 인민공원이다. 시장은 인민공원 건너편에 있다. 인민공원에 몇몇 사람들이 나와 기공 등 운동을 한다. 공원 안에는 무대 시설이 있다. 인민공원 옆에는 호수가 있는데 물이 매우 맑다.
최근 백포 서일(白圃 徐一)이 주목받고 있다.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 당시 김좌진 장군은 그의 부하였다.서굉일 한신대 명예교수는 “서일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은 애국자”라며 “자신의 전 생애를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바쳤다”라고 평가했다.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사회에서 건국의 지표로 안중근을 본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