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왕(尊王)을 명분으로 감행한 군사정변을 통해 성립된 메이지정권 최상위 권력집단은 군권을 장악한 메이지군벌이었다. 군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조선 침략과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는 명분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조선과 관련된 역사적 논의는 반드시 목적의식적이고 일관된 서술이 필요했다.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주도하고 관변학자들이 부역한 군국주의적 역사관(식민사관)에 입각한 ‘식민사학’이 형성되었다.식민사학 논리의 핵심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일제 침략이 아닌 한국사의 역사적 귀결이라고 바라보는 데 있었다. 바로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
말갈은 실체가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시대, 동일한 지역에 존재했던 많은 국가 또는 집단과는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만주지역에서 비롯되었던 한민족의 여러 국가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선 기록상으로 『삼국사기』 에 등장하는 수많은 말갈 관련 기록과 중국 정사 중 「동이열전」에 등장하는 말갈계 종족들의 기록들, 『수서』이후에 등장하는 말갈은 독립된 열전으로 처음에는 「동이열전」에서 시작해서 「북적열전」으로 이어지는 관련 기록이 많아 남아 있다. 일본사서에는 『속일본기』,『유취국사』 등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해 멸망 후 고려의 발해 계승의식을 심층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국사에서 발해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역사 계승의식은 특정 집단이 내부적으로 동질성을 체감하는 한편, 다른 집단과의 차별성을 인식하는 근거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발해 세자 대광현을 비롯
그 옛날 발해공주가 살았던 발해는 어떤 나라였을까? 말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라고 하면 몇 마디 못하고 주춤하게 된다. 결국 아는 내용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고구려인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하고자 세운 나라가 발해이고 그래서 당연히 한국사이며 거란에 의해 멸망한 후 발해 유민들은 대거 고려로 유입되어 그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