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촌 이암 선생의 《단군세기》를 보면 “배달 신시 개천 1565(단기 원년, B.C. 2333)년 10월 3일에, 신인 왕검께서 오가(五加)의 우두머리로서 무리 8백명을 거느리고 단목 터에 와서 백성과 더불어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지내셨다(至開天千五百六十五年上月三日하야 有神人王儉者가 五加之魁로 率徒八百하시고 來御于檀木之墟하사 與衆으로 奉祭于三神하시니)"는 구절이 있습니다.이것은 단군조선 건국 1565년 전에 환웅천왕이 홍익인간 정신으로 신시 개천을 했고 B.C. 2333년 10월 3일에 단군왕검이 이를 계승하여 홍익인간 정신을 건국이
동아시아 동북부 지역에는 만리장성, 고구려 천리장성, 고려 천리장성 이렇게 3개의 성이 있습니다.중국의 만리장성은 중국이 수비를 목적으로 쌓은 성으로 북방 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습니다. 기원전 222년에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만리장성을 연결했습니다. 여기서 북방 민족은 아홉 부족이 연맹체를 이루어서 나라를 세운 단군조선 연맹 북방 민족을 말합니다. 고구려의 천리장성은 고구려가 수나라의 침공을 물리친 후에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하여 요동 만주 벌판의 부여성(중국 길림성 농안/장춘)에서 요하 하구까지 쌓은 성입니다. 6
지난 추석 연휴에 안시성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안시성’을 보았다. 명절 기간에는 역시 사극 영화가 대세인 것 같다. 영화 ‘안시성’ 외에도 사극 영화가 몇 편 더 있었지만 ‘안시성’이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물론 주연 배우나 감독의 명성도 한 몫 했을 것이고, 스크린 장악과 홍보도 주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 애정이 많은 이들에게는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우선 반가울 것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작가의 상상력과 감독의 연출을 통해 어떻게 살아있는 역사로 창조했는지가 궁금하다.
2018년 7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그것 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고조선 및 고구려 유적지 답사단이 구성되었고, 중국 동북지역에 존재하는 고조선과 고구려 유적지를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뜨거운 여름을 견뎌 내었다. 우리 역사의 첫 출발점이자 민족의 뿌리 역사를 담고 있는 고조선의 중심지와 그 땅에서 다물이라고 하여 고조선의 영토뿐만 아니라 천하의 중심이라는 천하관까지 물려받고자 했던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하였다. 교과서에서 배운 지금의 북한 평양과는 거리가 먼 여정이었다. 그 동안 많은 학자가 연구한 결과, 우리 역
대동역사모임(대표 심백강, 허신행)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일깨우고 우리의 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중국인의 조상이 쓴 자료에 근거하여 작성한 공개질의서를 중국대사관에 보냈다고 밝혔다. 대동역사모임은 "한국사가 중국사에 귀속된다는 주장은 중국의 동북공정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이론이다. 중국 정부는 그간 동북공정을 학계의 일
외세의 침략을 유난히 많이 받아온 우리역사에는 민족을 이어오기 위하여 목숨으로 나라를 지키신 분들이 많고 많다.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는 비록 그 모습이 모셔져 있지는 않지만 고구려 양만춘 장군도 그중 한 분이다. 불세출의 명장인 그는 지금으로부터 1370년 전인 서기 645년 6월 20일부터 9월 18일까지 치열하게 벌어졌던 고구려와 세계 최강대국인 당나라와
우리나라 전통적인 칠은 검은빛의 옻칠이 대부분이었지만, 황칠나무에서 추출한 황금색의 황칠(黃漆)이 있었다.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황칠나무는 ‘노란옻 나무’라고도 하고, ‘상철나무’, ‘황철나무’라 부르기도 한다.‘옻칠 천년 황칠 만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황칠나무는 특산품으로 다른 도료에 비하여 매우 뛰어나고 귀하여 주로 왕실에서 사
"조선 왕비ㆍ후궁의 간택과 책봉 : 왕의 아내가 되다. 제목이 이상하지 않나요?"이미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이렇게 물으며 '조선 왕비ㆍ후궁의 간택과 책봉'을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뭐가 이상하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사이. 이 연구원의 말이 이어진다."적서 구분, 처첩을 구분한 조선에서 처 외에는 아무리 신분이 높아도 모두 첩이지요
제 68주년 광복절(光復節)이 다가온다. 나라가 해방된 것을 어찌 빛을 회복했다고 할까? 나라를 되찾음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의 빛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중국에게 사대하고 결국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기나긴 굴종의 우리의 역사는 그러나 그 이전의 영광의 역사마저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되풀이 되고 있다.우리 스스로뿐 아니라 중국도 동북공정으로 우리역사
『환단고기』에는 치우천황의 중원 정벌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치우는 14대 환웅이며 헌원(黃帝)을 정벌하여 굴복시킨 천하무적의 군신軍神이었다. 환웅의 나라 신시를 역사적 사실로 입증해주는 기록이 우리 기록이 아니라 중국의 기록, 사마천의『사기』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삼국사기』에도 백제와 고구려가 중국을 정벌한 역사가 최치원의 입을 빌어 기록되어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