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화는 예인신문의 여기자였다. 그가 상의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뜻밖에 온 편지였다. 나는 그와 통화를 한 적은 있었지만 만난 적은 없었다. 만나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어제 신문사에서 퇴근하는 길에 선생님과 유 선생님 두 분을 세종문화회관 분수대에서 먼발치로 보았습니다. 두 분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시고 퍼포먼스를 하시기
동숭동과 인사동은 외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처럼 되어간다. 동숭동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자주 온다.동숭동은 연극 공연예술이 많은 곳이다. 그에 비해 인사동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해외에 동숭동이 문화거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리라.인사동은 쇼핑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가볍고 비용이 저렴한 게 많다고 한다.동숭동은 뒤에 낙산언덕으로
나는 지하철 시청역에서 인천으로 가는 전동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전동차를 타고 부천역에 가서 내리면 되었다. 역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명등의 광도가 낮아 상당히 어두웠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도를 낮춘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선가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때 예쁘게 생긴 어떤 대중가수가 불러서 히트했던 초혼招魂이라는 노래였다.
‘명상’은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간직해온 문화이다. 지역과 종교 그리고 문화마다 명상에 관련한 저마다의 문화적 전통(클릭) 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명상의 이론이나 수련법에는 서로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그렇다면 한국식 명상은 다른 문화의 명상과 어떻게 다르고 같은가? 인간관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카카오톡 애플로 들어갔다. 거기엔 내가 기록한 글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카카오톡 ‘진한리’ 밴드에 가입한 회원들은 그 글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읽었을 것이다.나는 「삼성대왕」을 찾아내어 유 선생이 읽도록 하였다. 유 선생이 읽었다. 삼성대왕질병 가져가실까 삼성대왕액운 앗아가실까 삼성대왕질병과 액운이 있
나는 두 달에 한 번 내가 속해 있는 민족미래포럼에 나간다. 회원은 100명. 내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회원은 은퇴한 대학교수와 변호사들이었다. 외견상 사회적 커리어가 물씬 풍기는 사람들이었다. 인원이 100명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박사나 변호사나 대학교수라는 직함이 없는 내가 소설가라는 자기소개만 가지고 그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쉬운 일 같아 보이지
고종황제의 조선제국(朝鮮帝國) 당시였던 1910년 8월 29일의 [국치일]을 마지막으로, 일본의 국수주의 군국정권 지배자들이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 강점했다.그와 동시에 조선의 영구 지배 흉책을 획책하게 된 것이 소위 ‘조선총독부’였다. 이들은 경복궁의 궁전 정문 [광화문]과 그 양면의 성벽들을 철거하는 등 궁궐 건물들을 함부로 헐어낸 자리에다 일인들의
코리안스피릿은 6월 9일부터 매주 월요일 노중평 작가의 장편소설 을 연재합니다. 감응주술이란 신을 감응하는 데 쓰는 주술이라는 뜻입니다. 독자 여러분에 무교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다음은 노 작가의 말입니다. “무교라는 말에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상고시대 역사, 시원종교, 인간을 간섭하는 우주 에너지
국학기공의 기본철학은 홍익인간 정신이다. 우리 민족의 핏속에 연연히 흐르고 있는 전통적 가치관을 찾으면서 건강한 심신을 단련하는 것이다.기공은 생활체육으로서 이를 통해 민족의 자존심은 물론이고 건강을 되찾는다.필자도 25년 전 집 근처 단월드 역삼센터와 첫 인연을 맺었다. 처음엔 단학이 태권도장인 줄 알았다. 입문하기 전 나는 늘 허리요통이 자주 괴롭혀 병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맺은 ‘합방 조약’을 내세워 조선 땅을 강탈했다. 이들은 1906년에 설치했던 이른바 ‘조선통감부’를 '조선총독부'로 이름을 바꾸고 총독부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보내왔다.그러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1910년 10월 1일부터 관보(官報)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데라우치 마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