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학이 선도의 맥이라는 점에서 축지법을 하고, 격벽투시를 수련시키는 곳으로 알고 있으면 10년을 해도 단학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도력은 도를 통해야만 나오는 것입니다. 도를 통하지 않고는 도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도력에만 욕심이나 관심을 두기 이전에 먼저 정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도를 통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단학은 학문이면서 종교 아닌 종교요, 과학
내 몸은 내가 아니라 내 것입니다. 이것은 활구(活口)입니다. 활구란 수행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을 나타낸 문구입니다. 내 몸이 내 것이라는 것은 내가 내 몸을 볼 수 있을 때, 내가 내 몸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알게 됩니다. 정신은 몸 안에서만 놀지만 이것이 몸 밖에서는 우주적으로 놉니다. 그 상태가 되면 유체이탈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체이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하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성공'이라고 답한다. 무엇이 성공인지 명확하게 규정하지도 않은 채 사람들은 성공하기를 열망하고, 우리 사회 역시 성공이 최고의 가치라고 시스템을 통해 역설한다. 문서로 남아있는 인류의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승자의 기록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일 뿐 자신의
삼십 년 전 모악산에서 나의 실체가 천지기운이고 천지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이 깨달음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지금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함과 동시에 지구 평화의 실현이라는 큰 대의에 동참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 깨달음을 대중화할 수 있는 방
인간의 감정은 모든 정신작용 가운데 가장 일차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반응입니다. 감정 그 자체는 긍정이나 부정의 대상이 아닌 인간 생존에 필요한 뇌의 작용일 뿐입니다. 두려운 감정 때문에 위험을 피하고, 불안한 감정 때문에 안전한 환경을 찾고, 분노의 감정 때문에 맞서 싸우는가 하면, 사랑의 감정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보살피기도 합니다.감정은 없앨
우리 몸에는 우리가 몰랐던, 느끼지 못했던 내기가 있다. 내기는 배우는 것이 아니다. 느끼고 깨닫는 것이다. 감각과 마음이 하나 되는 곳에서 기는 나타난다. 마음이 죽으면 기가 죽는다. 심기혈정이다. 우리나라에 삼대경전이 있다. 삼일신고(三一神誥), 천부경(天符經), 참전계경(參佺戒經)이다. 외국의 경전인 성경(聖經)이나 불경(佛經)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십'은 중요한 숫자이다. '십'은 평등을 이야기하고 하늘과 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십'의 본래 의미는 하나가 되다, 화합, 조화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상징한다. 조화와 사랑이다. '십'이 없으면 여러분이 태어날 수가 없다. 우주와 '십'이 된 것을 천지인이라고 한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다.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우리는 '나'라고 하는 그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겠다. 대체로 '나'하면 자기 몸이 '나'인 줄 아는데, 몸은 나의 일부분이지 나의 전체는 아니다. 사람들은 이 '나'라는 한계 속에서 살기 때문에 항상 도전을 의식해야 하고, 항상 불안하고 또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천지기운을 터득하고 활용하려면 나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야한다. 내 몸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계속 호흡을 하고 있다. 그 숨결을 따라 가면서 가만히 느껴 본다. 천천히 숨을 내쉬고, 다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폐 가득히 충분히 숨을 들이마시고 나면, 그 다음에는 살기 위해서 그 숨을 내쉬어야 한다. 호흡을 계속 하려면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이기 전에 폐 안에 가득 찬 공기를 뱉어내야만 한다. 계속 들이마시기만
우리민족 대대로 전래한 선도수련은 기를 터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기를 터득하는 것은 얼을 찾는데 그 목적이 있다. 첫 단계가 기를 터득하는 단계이고, 그 다음단계가 얼을 되찾는 단계이다. 얼을 되찾고 난 다음 단계는 즐기는 단계이다. 즐기는 것, 이것이 바로 예로부터 우리가 말해 온 풍류도이다. 이 풍류도 속에는 대단히 깊은 철학이 담겨있다. 풍류라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