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국학원(원장대행 장영주)은 현정회(사무총장 이건봉), 인성회복국민운동본부(총재 이수성) 등과 공동으로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개천절 국경일의 경축행사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회견에는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대표 이성민) 등 33개 민족․사회단체가 함께했다.주최 측은 ▲개천절 정부행사에 대통령
4. 헌법상 전통문화란 민족문화를 의미한다.그러면 도대체 헌법 제9조의 전통문화란 무엇인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전통문화는 어떤 의미인가. 전통문화 전통문화 하지만 그 뜻이 너무 추상적이고 내용도 광범위할 수 밖에 없어 개념정립이 쉽지 않다. 전통문화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그 나라에서 발생하여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고구려의 인구를 적게는 70만 명, 많게는 350만 명까지 추정한다. 살수대첩 당시 수나라가 고구려를 2차 침공하면서 투입한 정규군의 수만 해도 113만 3,800명이라 하니 가히 세계대전이라고 할 만하다.인구와 전력의 압도적인 우세에도 수나라는 6차 침공에서 고구려에 완패했다. 결국 수나라는 멸망하였다. 고구려의 정신 전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이 노래로
다음 날 중국 사람들은 서울로 떠났다. 주위는 조용해졌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컴퓨터를 켜고 앉아 있었다. 내게서 일어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이명지로부터 문자가 왔다. “애신각라 선생이 서울에 며칠 묵었다 가겠다고 하는데 당신이 안내를 맡았으면 좋겠어. 제천단이 당신이 사는 고장에 있으니 말이야.” “이유가 무엇인가?”나는
근화가 계주와 함께 삼산을 밟으러 떠나던 날 나는 진한리에 사는 친구 이명지로부터 카카오 톡을 받았다.“진한리에서 이숙이라는 관광요식업을 하는 여자가 있는데, 자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이상한 생각이 들게 하더군. 혹시 결혼 약속이라도 했다가 헤어진 여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네가 허락한다면 이 여자와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진한리에
근화는 1년이라는 수습기간을 마치고 홀로서기 굿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굿을 하는 날 아침 7시 경에 집에서 출발하였다. 걸어서 30분 만에 굿당에 도착하였다.산신각은 누가 청소했는지 말끔하게 청소 되어 있었다. 나는 산신각 안으로 들어갔다. 산신 뒤에 있는 산신도에서 까치가 무엇인가 내게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호작도虎雀圖에서 보듯이
근화는 직장에 1년 동안 휴직을 신청하고 계주의 집에서 무당수업에 들어갔다. 그는 숙식을 함께하며 신어머니를 따라다녔다. 나는 근화가 무당수업이 3개월 째 접어들었을 때 계주의 집에 가서 근화를 만나보았다. 그녀는 이제 그를 괴롭히던 신병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건강이 좋아 보였다.“근화 씨, 이제 아프지 않아?”“네.”“다행이야.”“수업은 잘 돼 갑니
웬 할머니가 그를 찾아와 무조건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얗게 옷을 입었는데 걸음이 무지하게 빠른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근화를 소래산으로 데리고 가서 마애여신상 앞에 세웠다. 장군바위라 불리는 넓적한 바위에 부조로 새겨져 있는 여신상이었다. 마애여신은 얇은 신의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관직을 가진 도사처럼 관모를 쓰고 있었다.“이 여신이 나이니라. 이 마애상
날이 저물기 시작하였다. 오늘 행사가 다 끝났으므로 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근화를 집에 바래다주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로 생각되었다. “저녁이나 함께 하고 헤어질까요?” 혁거세 선생이 내게 물었다. “근화 씨를 집에 보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계
계주가 차에 들어가서 홍철릭을 입고 홍갓을 쓰고 방울과 부채를 들고 나타났다. 얼굴과 손을 빼곤 온 몸이 온통 붉은 색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홍철릭이란 조선왕조시대에 왕궁에서 임금을 호위하는 무사들이 입었던 군복이었다. 그들은 붉은 갓도 쓰고 있었다. 조선왕조시대엔 붉은 색으로 치장한 근접경호원들을 별감別監이라 하였다. 그들이 별감의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