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전인 1919년 3월 1일 '기미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일어난 비폭력평화운동은 유관순(柳寬順) 열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분의 하나밖에 없는 숭고한 목숨과 자유를 빼앗고 다치게 하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당시 지구의 3/4이 식민지가 되고 원주민들은 갑자기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우리 선조의 ‘3.1만세 운동’은
설날에도 고향을 내려가지 않은 청년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에게 명절은 ‘귀향’이 아니라 ‘귀양’이라고 하더군요. 어릴 적만 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세뱃돈도 받으니 이보다 좋은 날도 없을 거라고 기다리던 때와 다릅니다. 이유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척들의 잔소리입니다. 청년들은 “아직도 취업 못 했니?”, “졸업하면 뭐할 거니?”
진주는 충절의 땅이다. 1592년 조일전쟁(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시민 장군은 3,8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물리쳤다. 그 유명한 진주대첩이다. 그러나 이듬해 2차 전투에서는 7만 민관군이 10만 왜군에 맞서 싸웠지만 패배했다. 승전을 자축하던 왜군의 자리에서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이가 있었다. 조선의 관기 논개다. 이러한 역사는 교과
울산은 옛 신라의 땅이다. 당시 신라인들은 고조선에서 왔다. 김부식은 신라본기에 따르면 고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았다고 밝혔다. 이승휴 또한 에서 신라는 단군의 후손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이름부터가 남다르다. 성씨인 박(朴)은 밝, 밝음의 한자식 표기이다. 이름인 혁거세(赫居世)는 우리말로
한민족 전통의 산실, (사)국학원에서는 1980년대 이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민족의 상고사가 중국사로 왜곡되어가고 있는 가슴아픈 현실을 지켜보면서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방식은 무엇일까 심도깊은 고민을 진행해오고 있다. 한민족의 상고사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상고사의 내용적 실체인 상고문화의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고, 이것이 중국의 상고문화, 이른 바 ‘염
여기서 국학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특히 역사를 타고 이어져 왔던 국학의 가치를 알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알면 자기 정체성이 확립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자기 자신을 잘 알려면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크게 보면 우리는 지구 중에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또 그 지구는 우주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 역
발해는 고구려의 후신으로 통일신라와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남북국시대를 전개한다. 전성기 때의 영토는 총연장 4,300km, 사방 5천 리에 달하여 고구려보다 두 배 이상 넓은 영토를 가진 대제국으로 수도만 다섯 군데를 설치하였다.발해는 당나라와 일본, 신라와 왕성한 교역을 하여 동쪽의 번성한 나라 ‘해동성국’이 되었다. 길을 가는 나그네는 융숭하게 대접하고
백제의 건국시조 온조대왕(?년~28년)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소실인 ‘소서노’의 아들이다. 주몽의 큰아들 유리가 졸본 부여(북부여)로부터 아버지 주몽을 찾아온다. 주몽께서는 평소 약속대로 유리를 태자로 봉한다.이에 불편해진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 ‘온조’와 함께 새로운 나라의 터를 찾아 마한 쪽으로 남하한다. 형 ‘비류’는 미추홀(彌鄒忽, 지금
국학기공 창시자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이 국학기공 대선사로 추대됐다. 대선사(大仙師)란 국학기공 최고의 자리이자 스승을 말한다. 국민생활체육 전국국학기공연합회(회장 권영주)는 지난 8일 국학원 본원(천안시)에서 17개 시도 국학기공연합회 임원진과 강사 3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학기공 대선사 추대 및 전국국학기공강사 축제’를 개최했다. 김창환 부회
앞서 마고당과 천제단을 통해 부산의 뿌리를 2회에 걸쳐서 소개했다. 마고부터 환인, 환웅, 단군까지 고대사의 문화유산이 현대의 지역문화로 계승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부산 스토리텔링이다. 이것으로 끝일까? 아니었다. 부산 곳곳에 ‘선도문화(仙道文化)’의 꽃이 만발했다. 선도가 무엇인가? 신선의 도를 말한다. 유교, 불교, 도교 등 외래문화가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