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 년에 으뜸가는 충신한국 고유의 선도사상을 담은 〈부도지〉 편찬 신라 박제상(朴堤上)의 정신을 기리는 동상이 건립된다. 경남 양산시는 오는 9일 오전 10시 박제상의 사당이 있는 효충사에서 《삽량주 간 박제상 공 동상 제막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나동연 양산시장, 사회단체장, 영해박씨대종회, 상북면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양산 출신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이고 29일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일이다. 1545년과 1932년의 역사로 387년의 세월과 국내와 국외라는 공간의 차이가 있으나 한 분은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한 분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하나뿐인 목숨을 바치신 것에는 차이가 없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무패 연전연승에 환호한다. 나아가 죽음 직전까
총선이 끝났다.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인 선거는 이제 끝났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결과가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이 또한 지나갔고 역사가 되었다. 깔끔하게 설거지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을 다짐하자.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탓으로 돌려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야만 한다.한민족의 3대 경전인 '참전계경(參佺戒經)' 제64
97년 전인 1919년 3월 1일 '기미년 3.1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일어난 비폭력평화운동은 유관순(柳寬順) 열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분의 하나밖에 없는 숭고한 목숨과 자유를 빼앗고 다치게 하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당시 지구의 3/4이 식민지가 되고 원주민들은 갑자기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우리 선조의 ‘3.1만세 운동’은
해마다 10월이면 오색찬란한 ‘유등’이 진주의 남강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2010년과 2011년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된 ‘진주남강유등축제’가 그것이다. 진주시는 축제의 기원을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3,800여 명의 군관민으로 왜군 2만 대군을 물리친 진주대첩에서 찾는다고 밝혔다. 당시
안시성전투에서 양만춘 장군의 화살 한 대로 쫓겨 간 당 태종은 중국인들에게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황제 중 한 명으로 평가되고 있다.당 태종 이세민(서기 599~649년)은 13세부터 수많은 전투에 참전한다. 백여 명에 가까운 적장을 단 한 대의 화살로 떨어뜨렸고, 그의 모습만 보아도 적장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중국의 명장이기도 하다.수차례의 무모한 고구려 침
김시민 장군과 조일전쟁(임진왜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조선군이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진주성. 이곳에서 V자를 그리면서 사진을 촬영하는 그들의 후손들을 본다. 이곳은 관광지 이전에 순국성지(殉國聖地)다. 성지를 어떻게 기리느냐에 따라 문화재의 의미도 달라진다. 역사를 지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korean spirit)으로
이순신은 일본 수군과 벌인 첫 해전인 옥포해전에서 적선 30여 척을 격파했고, 사천포해전, 한산도대첩, 부산포해전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명량대첩에서 12척의 함선과 빈약한 병력을 거느리고 130척의 적군과 대결하여 31척을 격파하고 모두 패퇴시켜 대승을 이룬다.이순신을 헐뜯은 원균은 180여 척의 배와 8,000명 이상의 정예 수군을 이끌고도 칠천
오늘은 근대 문화유산의 상징적인 공간, 정동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정동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을 말한다. 정동하면 뭔가 정겹고 동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근세조선의 도읍지였고 대한제국의 수도이자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 그 중에서도 가장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정동, 그 정동을 모처럼 다녀왔다. 정동 기행을 통해 민족의 아픔과
명량(鳴梁) 대첩의 현장 진도 명량해협에서 문화재가 다수 발견되었다. 명량해협의 발굴조사 결과, 이곳의 강한 조류로 인해 여러 시대의 유물이 서로 뒤엉켜 발견되었는데 명량대첩 당시의 흔적뿐만 아니라 삼국 시대 토기부터 고려, 조선, 근대, 중국 도자기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재들이 매우 넓은 구역에서 쏟아져 나왔다. 가장 큰 성과는 1597년(선조 30) 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