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무대는 반도인가? 아니면 고구려와 발해인들이 누볐던 광활한 만주대륙인가? 이에 대해 남주성 감사원 공공감사운영단장은 14일 사단법인 국학원 주최로 열린 제155회 국민강좌에서 우리 전통문화는 만주대륙을 중심으로 활동한 국가들과 관련이 깊다고 말했다. 이러한 배경은 그가 국내 최초로 완역한 《흠정만주원류고》에 따른 것이다. 이 책은 1,777년 청(
▶ intro (바로가기 클릭)▶ 1편 위서론 논란, 종지부를 찍다! (바로가기 클릭)▶ 2편 규원사화 진서론이 확산되다! ▶ 3편 식민사학 극복 움직임으로 확산 (바로가기 클릭)▶ 4편 최광렬, 이상시 vs 송찬식, 조인성…위서논쟁 격화(바로가기 클릭)▶ 5편 “규원사화 첫 박사학위…학문적으로 인정”(바로가기 클릭)▶ 6편 규원사
여자 관리인이 내가 잠만 자므로 걱정이 되어 내 방에 들어와 나의 동태를 살폈다. 다른 차원으로 나의 혼이 불려갔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내가 눈을 떠 보니, 관리인 여자가 내 앞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푹 잤습니까?” 여자 관리인이 물었다. “네, 푹 잤습니다.” 나는 관리인 여자와 작별하고 귀신호텔을 나섰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대야발(大野勃, ?~742년)은 대진국(大辰國), 일명 발해의 시조인 성무고황제 대조영(大祚榮)의 아우이다.서기 668년, 고구려가 당나라에 멸망하자 대조영은 아버지 대중상과 아우들, 처남들과 함께 고구려를 재건하기 위하여 떨쳐 일어난다. 그들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흑수말갈, 월희말갈, 속말말갈) 등 3만5천 명을 모아서 끈질기게 당에 대항한다.30여 년
외세의 침략을 유난히 많이 받아온 우리역사에는 민족을 이어오기 위하여 목숨으로 나라를 지키신 분들이 많고 많다.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는 비록 그 모습이 모셔져 있지는 않지만 고구려 양만춘 장군도 그중 한 분이다. 불세출의 명장인 그는 지금으로부터 1370년 전인 서기 645년 6월 20일부터 9월 18일까지 치열하게 벌어졌던 고구려와 세계 최강대국인 당나라와
2016년 첫 해돋이를 이곳에서 맞이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영남의 명산, 팔공산(八公山, 1,193m)이다. 대구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지점에서 솟았는데, 대구의 진산(鎭山)으로도 불린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 주신다’라는 갓바위가 팔공산의 동쪽 끝 관봉(冠峯) 정상에 있다. 탐방객만 연간 2백만 명에 달한다. 물
발해는 고구려의 후신으로 통일신라와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남북국시대를 전개한다. 전성기 때의 영토는 총연장 4,300km, 사방 5천 리에 달하여 고구려보다 두 배 이상 넓은 영토를 가진 대제국으로 수도만 다섯 군데를 설치하였다.발해는 당나라와 일본, 신라와 왕성한 교역을 하여 동쪽의 번성한 나라 ‘해동성국’이 되었다. 길을 가는 나그네는 융숭하게 대접하고
우리 역사에 대해서 학창시절 역사과목을 통해 접한 것이 전부인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별로 이해 정도는 다르겠지만 분명 역사인식의 차이는 있을 것 같다. 역사인식은 어떻게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창과 같다. 대개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역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바로
2010년 11월 16일.통영시는 통영수산과학관 부지에 발해1300호 기념조형물인 ‘침묵의 영웅’ 제막식을 가졌다. 작품 ‘침묵의 영웅’은 발해 1300호 대원들의 넋을 기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도전정신과 호연지기를 심어주기 위해 제작되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왜 우리는 발해를 꿈꾸는가? 발해는 698년 개국된 이래로 926년 거란에 망한 후 800여 년
몇 해 전에 모 학술회의 장소에서 받았던 질문이다. "발해의 원래 국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이 질문의 의도는 발해라는 국호는 중국 사대주의 사관의 발로이며, 원래 국호는 대진국(大震國)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발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그런가에 대해서는 따져 보아야 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