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건국시조 온조대왕(?년~28년)은 고구려 건국시조 주몽의 소실인 ‘소서노’의 아들이다. 주몽의 큰아들 유리가 졸본 부여(북부여)로부터 아버지 주몽을 찾아온다. 주몽께서는 평소 약속대로 유리를 태자로 봉한다.이에 불편해진 ‘소서노’는 두 아들 ‘비류’, ‘온조’와 함께 새로운 나라의 터를 찾아 마한 쪽으로 남하한다. 형 ‘비류’는 미추홀(彌鄒忽, 지금
약 2,000년 전, 동명성왕 주몽(추모)선조께서 고구려를 건국하신다. 동시에 고구려의 헌법과도 같은 ‘개물교화경(開物敎化經)’을 발표하신다. ‘세상을 여는 가르침’으로 해석될 만한 ‘개물교화경’은 144자의 짧은 문장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건국과 혁명에 즈음하여 발표된 문장 중에서 가장 거룩한 하늘의 소리와도 같은 진리서이다. 그중에는 나라가 구태여 군
[14]편("클릭" 그대 진정한 평화를 원하십니까?)에 이어...흔히 고구려라 하면 무력이 강하여 넓은 땅을 차지했던 나라, 주몽(朱蒙, B.C. 58년~B.C. 19년)이 건국한 나라쯤으로 알고 있다. 주몽의 원래 이름은 추모(鄒牟)였다. 고구려를 건국하여 ‘추모왕’이 되고, 사후에 ‘동명성왕’으로 기리게 된다. 부여에서는 ‘추모(주몽)’란 ‘활을 잘
[11]편("클릭"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입구에는 황금빛 광개토대왕이 있다)에 이어...한국경제를 움직이는 CEO 30명이 선정한 인물 100인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하였다. CEO 30명 모두가 존경하는 인물 10명 중에 ‘광개토호태왕’을 1위로 꼽았다.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이 ‘광개토대왕’이다. 그의 업적은 고구
천안(天安)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다. 유관순, 이동녕 등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민족 5천년 역사를 만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2008년 10월 국학원이 19만 8천㎡(6만 평) 규모로 개원한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이 그것이다. 뒤로는 흑성산(黑城山, 495m)을 배경으로 한다. 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독립기념관이고 서쪽
[10]편("클릭" 국학원은 꽃 한 송이, 소나무 한 그루에도 이유가 있다)에 이어...이야기 하나. 광개토대왕은 누구인가?한민족역사문화공원 입구에 서면 위풍도 당당하게 말을 타고 창을 비껴든 금빛 찬란한 장수 한 분이 입구를 지키고 계십니다. 우리 역대 왕 중에서 모두가 가장 존경하는 왕, 고구려의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374~412년)입니다.고구려
역사는 사관의 이야기라고 한다. '승자의 역사인가', '패자의 역사인가' 에 따라서 전혀 다른 역사를 배우게 된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장수, 연개소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김부식의『삼국사기』는 왕을 시해한 무도한 인물로 묘사한다. 하지만 단재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연개소문이야말로 우리 4000년 역사 이래 제일로 꼽을 영웅’이라고 극찬했다.
암각화라고 하면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유명하다. 국보로 지정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또 암각화는 경상도에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전북에도 울산과 똑같은 이름의 대곡리 암각화가 있다. 김현식 남원문화원 사무처장의 차로 현장을 다녀왔다. 대곡리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암각화는 연못을 앞에 둔 봉황대를 찾으면 된다. 마을 이름과 봉황은 관련이
우리나라 사람처럼 산을 좋아하는 민족도 많지 않을 것이다.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러 산을 오른다. 계절이 바뀌면 꽃구경, 단풍구경을 하러 산으로 떠난다. 관련해서 아웃도어 시장도 지난해 매출이 6조 7천억 원에 달했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이쯤 되면 산은 한민족의 집단 무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 뿌리에는 국조 단군이 있다
나는 부천역에서 내려 와우고개 길 입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혈압이 갑자기 떨어질 때처럼 잠깐 머리가 어찔하였다. 이런 순간이 오래 지속되면 넘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근화가 내림굿을 할 때를 기억하는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근화가 내림굿을 한지가 언제 인데 감응신령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그런 것을 묻고 있다. “기억합니다.”“그때 한인천제가 오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