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탄’으로 끝나는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머나먼 미지의 세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 민족 고대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은 지역이며, 현재 우리 동포인 고려인 30만 명이 거주하는 땅이자 미래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중앙아시아인의 관점에서 기록한 중앙아시아의 역사서가 국내에서 첫 번역, 출간되었다. 꿈그림 출판사에서 나온 〈타지크1〉은 타지키스탄에서 출생한 대표적인 역사학자 B. G. 가푸로브(Gafurov)박사가 저술한 역사책이다.가푸로브 박사는 구소련 시절 왕성한
크루즈와 아무르 횡단열차, 환바이칼 열차를 타고 발해의 옛 성터를 둘러보고 아무르 강변을 거닐며, 바이칼의 샤먼을 만나는 등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나는 특별한 여행이 시작된다.유라시아실크로드연구소는 오는 4월 22일부터 5월 7일까지 16일간 ‘한민족원향탐사회’ 제15차 해외사업으로 “아무르와 바이칼, 알타이 역사답사”를 떠난다. 오랜 인류사의 흔적과 놀랍도록 신비한 풍광, 현지 문화를 경험하고 개인 여행으로는 찾아갈 수 없는 숨은 유적지 탐방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전 과정에는 고대 이전의 방식대로 뗏목을 타고 한민족의 시원을 찾았
중년 이후 호르몬의 변화, 체력의 저하, 수면 부족, 우울감의 상승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해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지며 치매가 오지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이 들 수 있다. 걱정하는 마음이 스트레스가 되면 오히려 뇌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어떻게 뇌 기능을 향상하고 기억력을 향상시킬까?인류 역사상 가장 좋은 뇌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조사한 연구결과가 있다. 2014년 미국 포크 교수는 논문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뇌가 다른 부분은 일반 사람과 비슷했는데 유독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특별히 더 큰 것을 밝혔다.
최근 10년간(2014~2023년) 우리나라 산불 발생 건수는 5,667건으로 산림 40,037ha와 주택, 건축물 등에 피해를 입었다. 이는 여의도 전체 면적 290ha의 약 138배에 해당한다.특히, 봄철에 고온건조 현상으로 산불이 잦은데 2022년에는 울진‧삼척 산불 등으로 24,797ha가 불에 탔고, 2023년에는 서울 도심에서도 산불피해가 발생하는 등 해마다 초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있어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본격적인 대형산불 특별대책기간(3월 15일~4월 15일)에 돌입하면서 국민의 산불이해도를 높
매년 봄철은 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기가 건조해 지고 지역에 따라 강풍이 부는 곳이 많아 산불위험이 높다. 봄철 산불의 발생 요인 중 하나로 논과 밭에서 영농부산물을 소각하는 일명 ‘밭두렁 태우기’가 손꼽힌다.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는 지난 13일부터 오는 4월까지 봄철 논‧밭두렁 및 영농쓰레기 소각에 의한 산불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영농부산물 수거 및 파쇄를 집중적으로 실시한다고 밝혔다.13일 울진국유림관리소와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등 총 28명이 동원되어 산림 인근 경작지에서 영농부산물 및 농산폐기물 등 산림주변 인화
날씨는 자연풍광 또는 도심 풍경과 어우러져 뜻밖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또한 기후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모습으로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한다.기상청은 지난 13일 ‘제41회 기상기후 사진‧영상 공모전’ 수상작 40점을 기상청 누리집과 기상기후 사진‧영상 공모전 누리집을 통해 발표했다.이번 공모전에는 총 3,683점이 출품되어 심사위원단 점수와 10일간 진행된 국민투표 결과를 각각 50% 합산한 결과, 대상인 환경부 장관상은 사진부문에서 김정국 씨의 ‘얼음 속 한라산’이 선정되었다.마치 얼음 속에 갇힌 듯한 백록담을 찍은 ‘얼음 속 한
서울 관악구 낙성대공원 광장의 강감찬 장군 동상. 사진 강나리 기자. 1천 년 전 고려는 해동성국 발해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제압하던 거란과 26년 전쟁 중이었다. 최근 KBS2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성난 거란의 기세를 꺾고 몽골과의 전쟁 전까지 200년간 평화의 기틀을 닦아 백성들의 오랜 칭송을 받은 강감찬 장군의 눈부신 활약을 조명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가면 장군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장군이 태어난 집터와 영정을 모신 사당 안국사를 중심으로 조성된 낙성대공원, 장군의 시호인 인헌과 어릴 때 이름인 은천을 따른 학교들(인헌초‧중‧고, 은천초)이 있다. 2008년 이후 행정동으로 인헌동, 은천동, 낙성대동을 사용하고 있다. 난곡동에 가면 강감찬 장군이 지나다 지팡이를 꽂은 것이 나무가 되었다는 1000년 수령의 굴참나무도 있어 매년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낸다. 낙성대공원 강감찬장군 사당인 안국사에 장군의 탄생설화가 그려진 벽화. 사진 강나리 기자. ‘별이 떨어진 곳, 낙성대’에 얽힌 장군의 탄생 설화는 《고려사》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한다. 《고려사》에 “어떤 사신(使臣)이 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오다가 큰 별이 인가(人家)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관리를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마침 그 집의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사신이 기이하게 여기고는 데리고 개경으로 돌아와 길렀는데 이 사람이 바로 강감찬이다”라고 기록했다. 강감찬 장군과 별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고려 문인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는 장군이 재상으로 있을 때 송나라 사신이 “하늘에서 문곡성(文曲星,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 학문을 관장하는 별)이 사라진 지 오래되어 그 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강공이 바로 문곡성”이라며 예찬했다고 전한다. 당시 거란과의 전쟁에서 번번이 패하여 엄청난 배상을 하며 어려움을 겪던 송나라 입장에서 강감찬 장군은 신화적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강감찬장군 생가터와 낙성대공원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400m가 채 안 되는 주택가 안쪽에 장군의 일화가 벽에 그려진 낮은 담장을 지나 장군의 생가터가 나온다. 장군이 태어날 때 큰 별이 떨어졌다는 곳이라 기록된 유허비만 서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이곳에는 장군과 더불어 태어났다는 나이 많은 향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1996년 안타깝게 생을 마치고 대신 150년 된 젊은 향나무가 그 터를 지키고 있다. 강감찬 장군 생가터 근처 주택가 낮은 담장에 그려진 강감찬 장군 벽화. 사진 강나리 기자. 지난 9일 방문한 강감찬장군 생가터. 역사 강사와 함께 인물과 유적을 찾아온 탐방객들이 유허비를 둘러싸고 장군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생가터에서 다시 길을 나서 500m정도 거리에 낙성대공원이 나온다. 광장에는 강감찬 장군이 힘찬 기세로 말을 달리는 형상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고, 홍살문을 지나면 ‘안국문’현판이 걸린 외삼문, 그 안에 고려의 백성이 장군을 기려 세웠다는 3층 석탑과 강감찬장군사적비가 좌우에 놓였다. 낙성대공원 내 강감찬 장군의 사당 안국사의 외삼문인 '안국문'. 사진 강나리 기자. 장군의 생가터에 자리했던 사리탑 형태의 화강암 삼층석탑은 1973년 낙성대공원이 조성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석탑의 앞면에 ‘강감찬 낙성대 姜邯贊 落星垈’라 새겨져 장군의 출생지임을 나타낸다. 13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탑꼭대기 세워 놓은 장식 부분인 상륜부가 훼손되어 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집터에 서 있던 사리탑형식의 3층 석탑. 사진 강나리 기자. 고려 백성이 강감찬 장군을 기려 세웠다는 석탑 가운데에 '강감찬 낙성대'라는 글귀가 새겨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다시 내삼문을 지나 약간 경사진 정원을 따라 3층 계단을 오르면 장군의 영정과 일생르 그린 벽화가 있는 사당 안국사가 있다. 안국사는 고려시대 목조 건축을 대표하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본떠 세웠는데 팔작 청기와 지붕이 올려져 웅장한 느낌을 준다.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안국사. 사진 강나리 기자. 이곳 안국문 기둥과 안국사 사당의 기둥은 위보다 중간이 굵고 불룩한 곡선을 이루는 특징을 나타낸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듯 하다. 외삼문인 안국문 기둥(왼쪽)과 사당인 안국사 기둥. 사진 강나리 기자. 낙성대공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관광지가 되지 않고 주민의 삶 속에 녹아들어 산책로이자 쉼터로 역할을 하고 있다. 쌀쌀해도 바람결에 봄을 느낄 수 있는 계절에 산책 나온 주민과 아이들이 외삼문 앞 공간에서 투호 등 전통놀이를 체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광장 주변으로는 강감찬전시관과 영상실, 북카페가 있고, 낙성대 유아숲체험원, 반려견놀이터, 낙성대 텃밭이 있고 서울 둘레길과 연결된다. 낙성대공원 주변은 관악산과 이어져 유아숲체험장 등이 조성되어 있고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쉼터로 이용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낙성대 곳곳에는 강감찬 장군과 관련된 설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주로 어린 나이에 과거에 합격해 어린 원님으로 부임한 젊은 시절 백성을 괴롭히는 호랑이, 개구리, 탐관오리 등을 물리친 이야기들이다. 백성들이 장군에게 열망하던 초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고려사》 열전에 전한 강감찬 장군은 인생의 말년이라 부르는 나이에 가슴에 품은 꿈을 펼치고 나라를 구한 대기만성형의 인물이다. 36세인 고려 성종 2년(983년) 과거에 급제하여 26년 뒤 62세에 예부시랑이 되어 과거시험을 출제하는 지공거 역할을 했다. 실제 장군의 활약은 거란의 2차 침공이 있던 이듬해인 1010년 그의 나이 63세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사》 열전 중 강감찬 장군부분(왼쪽)과 《고려사》.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거란의 2차 침공을 기점으로 3차 침공 때인 1018년 72세 나이로 총사령관인 상원수가 되어 강민첨, 김종현 등 장수들과 함께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펼쳐 흥화진 전투와 귀주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거란의 명장 소배압이 10만 명을 거느리고 쳐들어왔으나 장군은 거란군을 끝까지 추격해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뿐이었고, 이후 거란이 다시는 고려를 넘볼 수 없게 했다. 특히, 그는 왕과 백성에게 사랑받는 영웅이었다. 거란 2차 침공 때 항복 대신 그가 홀로 왕의 몽진을 주장해 지연 작전으로 거란을 물리친 후 현종은 “강공의 계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온 나라가 모두 좌임인左袵人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좌임은 오른쪽 섶을 왼쪽 섶 위로 여미는 북방 민족의 의복 방식으로 야만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총사령관으로 3차 침공을 승리로 이끈 후에는 현종이 직접 영파역까지 나와 잔치를 열고 금으로 만든 꽃 8가지를 장군의 머리에 꽂아주며 술잔을 권하고 위로와 감탄을 전했다. 또한, 영파역을 ‘의義가 흥한 곳’이라하여 흥의역으로 바꾸고, 역의 관리들에게 관복을 하사하는 등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당시 풍년이 들고 백성이 안정되어 나라 안팎이 평안하니, 사람들은 그 모두가 강감찬의 공이라고 생각하였다”고 기록했다. 안국사 내 강감찬 장군의 영정. 사진 강나리 기자. 전쟁영웅이라는 것만이 오랜 세월 장군이 사랑받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고려사》에 장군의 인물 됨됨이에 대해 “성품이 청렴하고 검약하여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았다.(중략) 의복은 더럽고 낡아서 보통 사람보다 낫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는 태조 왕건과 함께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 3,200여 명 중에서도 특별히 신흥사 공신당 벽에 초상을 그려 공적을 기린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강궁진의 아들이었으나 36세에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올랐다. 또한, 그의 행적 중 “강감찬에게는 12결의 땅이 개령현에 있었는데, 왕에게 아뢰어 군호軍戶에게 공급하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승리 후에도 장군은 관직이나 부귀영화를 쫓지 않았다. 나이를 이유로 사직을 요청했으나 현종은 수차례 만류하며 궤장(机杖, 팔걸이있는 의자와 지팡이)을 하사하고 사흘에 한 번만 조회에 나오도록 하는 등 배려를 하다가 73세에 사직을 허락했다. 이후에도 국가원로로서 역할을 요청했고, 현종 21년 (1030)년에 그의 나이 83세에 문하시중에 임명해 그를 존중했다. 안국사 내 벽면에는 강감찬 장군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한편, 그는 무관 출신이 아니라 문관으로서 관직에 올랐다. 거란과의 3차 전쟁 당시에도 뛰어난 전투력이 아니라 정확하게 전황을 파악하고 적을 제압할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여러 장군을 적시에 투입하고 연합해 승리했다. 이는 문관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고려를 전쟁의 화마에서 구하고 적이 넘보지 못할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고민하면서 생을 보낸 결과일 것이다. 또한, 권력이나 명예, 부귀와 같은 사사로운 욕심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 고려와 고려의 백성을 위한 공심公心으로 평생을 보낸 장군의 행보는 나랏일을 한다고 나서는 이들의 귀감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해 사명을 이루어낸 강감찬 장군은 인생을 사는 지혜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백제의 천년고찰 망해사(望海寺)는 봉황이 살다 날아갔다는 뜻의 진봉산 고개 넘어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 벼랑 위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곳에 세워져 예부터 서해로 떨어지는 붉은 낙조가 아름다운 명소로 유명하다.문화재청은 11일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학술 가치가 높은 자연유산 ‘김제 진봉산 망해사 일원’을 국가지정유산 명승으로 지정예고를 했다.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두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명승으로 지정할 예정이다.망해사는 642년(의자왕 2년) 백제 부설거사 창건설과 754년(신라
새봄을 맞아 옛날 이 땅의 어머니들이 수놓은 밥상보, 베갯모, 아기병풍에 겨울을 지나 봄꽃처럼 곱고 아름다운 자수를 수놓았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광주광역시 유일한 사립 민속박물관인 비움박물관(광주 동구 대의동)은 3월 12일부터 오는 4월 30일까지 2024 봄 전시 ‘철부지 문명의 봄 한국전통문화 자수꽃 피다’전을 개최한다.비움박물관 이영화 관장은 “옛 가정에서 여인들이 일상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손수 만들고 정성껏 수를 놓아 꾸몄다. 자수 작품만 보아도 모든 옛날 어머니들은 진정 예술가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궁궐과 사대부가의 면모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운현궁(서울 종로구)에서 봄기운 속에 전통 다도 체험행사인 ‘구름재 다실: 봄봄 운현궁’이 운영된다. 16일 토요일 오후 3시와 22일 금요일 저녁 7시 두 차례에 걸쳐 운현궁 ‘이로당二老堂’ 전각에서 향긋한 차향을 즐기며 전통 다도를 배울 수 있다.봄과 차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는 다도 강사와 함께 차의 종류와 기본 다례를 알아보는 알아‘봄’, 차를 우리고 마시며 옛 다식판에 삼색 다식을 직접 찍고 맛보는 즐겨‘봄’ 2가지 구성되었다.특히,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달이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