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편찬원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인 ‘서울과 역사’ 제101호를 발간했다. 이번 101호에는 고고학 분야를 포함해 조선시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서울 역사를 주재로 한 9편의 논문이 게재되었다.아시아문화원 배재훈 연구원은 ‘서울 은평뉴타운 ’청담사‘ 명문 기와 출토 건물지의 성격 검토’를 주제로 한 논문에서 2007년 은평뉴타운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대형 건물지를 사찰로 보는 기존의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고려시대 덕수원(德水院) 일 가능성을 제기했다.은평뉴타운 개발로 2007년~2008년 발굴
한반도의 고대와 중세 역사적 전환기에 한반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고, 남과 북의 역사‧문화적 연대를 강화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오는 10일 오후 1시부터 11일 오후 6시까지 경주 현대호텔에서 ‘신라왕경에서 고려 개경으로- 월성과 만월대’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추진단, 경주시, 한국고고학회,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공동주최하는 학술대회는 양일간 3개 소주제로 나누어 총 9개의 주제발표와 2번의 종합토론으로 진행된다.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당대의 기술과 정치‧문화가 집약된 신라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이귀영)는 11월 30일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 수중발굴조사 보고서Ⅱ’를 발간한다.진도 명량대첩로 해역은 조류가 빠르게 흘러 항해가 힘든 곳으로 정유재란 당시 명량대첩이 이뤄졌던 울돌목에서 남동쪽으로 약 4km 떨어져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011년 이곳의 유물을 불법 매매하려던 도굴범 검거를 계기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세 차례의 수중발굴조사를 진행하여 다양한 종류의 유물 650여 점을 발굴하였다.이번 보고서에 수록된 주요 유물은 도자기류와 전쟁 관련유물 등이다. 지난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이규훈)는 인천광역시립박물관(관장 정태범)과 공동으로 10월 30일부터 12월 9일까지 특별전 '江都(강도), 고려왕릉展'을 인천광역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특별전은 올해 고려 건국(918년) 1100주년을 맞아 39년간 고려 도성이었던 강화의 역사적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고려 고분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고자 기획되었다. 특별전은 ▲ 1부 강도, 고려의 도읍 ▲ 2부 강도, 고려 왕릉이 자리하다 ▲ 3부 강도, 고려 왕릉이 드러나다 ▲ 4부 강도, 고려인이 잠들다 총 4
서울 서초구 시민의 숲에 있는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이 새 단장을 마쳤다. 현실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크로마키 등을 포함해 관련 자료를 쉽게 검색할 수 있는 멀티비전, 체험학습실을 갖춰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관장 황길수, 이하 매헌기념관)은 지난 22일, 2017년부터 2년여에 걸쳐 전면 개선공사를 마치고 재개관식을 개최했다.매헌기념관은 1988년 12월 국민성금으로 건립하여 서울시에서 관리해오다 2015년 12월 국가보훈처로 소유권이 이전되었으며, 30년이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이귀영)에서는 9월 17일까지 해양유물전시관(전남 목포시) 중앙홀에서 테마전 '바다에서 건져낸 향기, 청자향로'를 개최하고 있다. 향은 불교를 신봉한 고려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각종 의례와 불교 행사에서 널리 쓰였다. 유교 문화가 유입되던 고려 후기에는 사대부들의 학업 도중 마음의 안정을 찾는 수단
청평산(淸平山, 779m)만큼 아름다운 곳도 없으리라. 강원도에서 금강산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여행기록이 남겼기 때문이다. 김상헌의 《청평록》, 박장원의 《유청평산기》, 서종화의 《청평산기》 등이 있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7대 명소 중의 하나로 지목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일명 경운산(慶雲山)이라고 한다. 부의 동쪽 44
묘청(妙淸, ?년~1135년)은 고려 인종 때의 스님이다. 인종은14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안으로는 이자겸과 척준경의 난을 당하며 대신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밖으로는 북방의 요나라가 멸망하더니 북송마저 몰락하면서 여진족의 금(金)나라가 자리를 잡고 압박해 오기 시작하였다.이때 고려의 큰 학자인 정지상의 추천으로 홀연히 나타난 ‘스님 묘청’은
국학의 길,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고, 한국인의 길, 우리 국학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출발점이 되는 단군조선에 이르게 된다. 그 이전부터 생성되어 단군조선시대에 정립이 되었던 우리 역사와 문화는 고유한 사유체계인 국학을 낳았지만 이천 년이 지난 시점에 일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정신문화적
‘다물(多勿)’은 순수한 우리말 ‘따물’에서 온 말이다. 땅을 ‘다 물려 받는다’는 말이다. 고구려의 국시(國是)가 바로 ‘따물’이다. 옛 조선의 땅과 정신을 다 물려 받는 나라가 되겠다는 각오로 일관한다.당시의 기록에는 ‘고구려’를 ‘고려’라고도 불렀다. 궁예는 나라를 세워 스스로 ‘후 고구려’의 개국 왕이 되었으나 점차 포악해져갔다. 결국 부하들에 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