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고구려 유적지 답사 2일차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2일차 일정은 산해관장성 성안을 탐방하고, 능원시와 건평현 경계에 있는 우하량 홍산문화유적지를 답사한 후 내몽고자치구 영성현에 위치한 요나라 중경성 터를 거쳐 적봉시 호텔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주변을 돌아보는 데, 어제 갈석산에서 보았던 무궁화를 다시 보았다. 호텔에서 본 무궁화도 역시 감흥이 남달랐다. 조식은 호텔 내에 있는 식당에서 뷔페로 먹었다. 조식에는 콩물과 유부가 있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콩물에 유부를 넣어 먹는다고 하여
국내 최초로 《흠정만주원류고》를 완역한 남주성 감사원 공공감사운영단장(사진)의 강의가 열린다.사단법인 국학원(원장 권은미)은 오는 14일 오후 7시 대한출판문화협회(서울 종로구 사간동)에서 남 단장을 초청해 제155회 국민강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흠정만주원류고》는 1,777년 청(淸)나라 건륭(乾隆) 황제의 지시에 의해 한림원(翰林院) 주관으로 당시 최
7월17일 오후 백두산에서 내려와 다시 강원도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다음 예정지로 출발을 한다. 발길을 재촉하는데 떠나려는 발목을 누군가 붙잡는다. 재중동포. "삼 사세요. 싸게 팝니다."식당 앞에 삼을 늘어놓고 말을 붙인다. 농투성이 같은 얼굴. 몇 사람이 그 말을 받아 흥정하여 몇 뿌리 산다. "잘 계세요. 내년에 또 뵈요. 건강하세요. " 타국에
“이 환도산성은 중원 세력이 여러 번 쳐들어 왔던 곳입니다. 꾀를 써서 물리치기도 하고 져서 환도성이 파괴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임찬경 박사는 환도산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중원과 고구려의 싸움을 설명했다."적이 쳐들어오자, 이곳으로 들어와 저항하면서, 한나라 장수에게 잉어와 술을 보내 적을 물리쳤습니다. " 대무신왕
심양 요령성박물관을 나와 서둘러 간 곳은 심양 신락(新樂) 신석기 유적지박물관. 오후 4시가 다 되어 곧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가이드의 말에 모두 바삐 움직였다. 유적지박물관 초입에 이르러 버스에서 내려 유적지 출입구로 갔더니 입장할 수 없다고 한다. 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있나 싶어 유적지박물관 직원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이곳에 대거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 전시에는 중국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관점에 유의하면서 관람하세요. 왜 요령성박물관이 요하문명을 강조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 7월 15일 오후 요하문명전 관람에 앞서 임찬경 박사의 해설을 듣고 전체 전시관을 밖에서 둘러보았다. 요령성박물관 3층은 온통 요하문명을 알리는
심양(瀋陽)으로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5)가 쓴 여행기 ‘모레아 기행’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레아는 펠로포네소스 반도를 말하는데 중세에는 ‘모레아’라고 불렀다. ‘모레아 기행’. “그리스인에게 모레아 기행은 흥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런 시련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썼다. “외국인이 그리스를 순례하는
닭과 지네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헤아릴 수도 있지만 그러한 습성을 이용해 민족정신을 말살하고자 했던 일제의 음모도 알 수 있다. 닭과 지네는 예로부터 서로 상극이었다. 절지곤충인 지네가 바람 소리를 내며 지나가다가도 닭의 눈에만 띄면 고양이 앞의 쥐가 되어 결국 닭의 밥이 되고 만다. 또한 지네는 닭의 고기를 좋아하여 밤에 닭을 습격하여 닭을
고조선 시대는 우리 역사의 시원이 된다. 그래서 우리 역사를 말할 때 항상 가장 먼저 거론되고 있고, 또는 거론되어야만 하는 단군 조선의 역사는 나무로 비유하자면 뿌리요, 물에 비유하자면 샘이다. 이것은 개천절 노래에도 나온다. 그런데 너무 오래된 역사이다 보니 남아있는 문헌이나 사료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
단학 수련을 하면서 국조단군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학 수련과 단군할아버지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몰라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단학의 뿌리는 저 위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나라의 시원과 관련이 있었다.단학은 옛날 우리나라 배달국 한웅천왕 시대부터 전해내려 온 우리 고유의 수행법이다. 환웅천황은 우리 국조이기 이전에 위대한 각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