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과 가야의 성립과는 어떤 관계일까? 광개토왕의 남정을 가야사의 시기구분으로 보는 것은 정당한가? 국정과제의 하나인 가야사 연구와 관련하여 가야의 기원과 시기구분, 국가적 성격, 주변국가와의 관계 등 쟁점사항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상고사학회가 공동으로 오는 21일과 22일 양일 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제1회 가야사 기획학술심포지엄-문헌과 고고자료로 본 가야’를 개최한다.첫날인 21일 ‘가야사와 가야고고학의 연구 경향’을 주제로 강동
인도 국빈 방문 이틀 째 9일 저녁,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150명을 초청해 동포간담회를 개최했다. 인도에는 약 10,500명의 우리 국민이 살고 있다.인도에서 창업해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청년 CEO, 인도 진출 기업인, 한-인도 다문화가정 부부, 유학생 등 각계각층의 동포가 참석했다. 이날 동포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다언어, 다종교, 다인종 국가인 인도에서 동포사회를 형성하고 발전시켜온 동포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동포사회의 저력을 바탕으로 양국이 상생발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역할을 당부했다.문 대통
답사팀은 비바람 속에 우의를 받쳐 입고 함안 아라가야의 말이산 고분군에 올랐다. 고령 대가야의 지산동 고분군이나 합천 다라가야의 옥전고분군과 비교했을 때 고분 하나 하나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마치 경주에서 본 신라 대릉원의 고분에 버금가는 대형 고분들이 산재했다. 외떨어져 두 개의 봉우리처럼 나란히 조성된 고분은 그 주인공들이 부부나 형제처럼 특별한 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고분군이 있는 말이산 구릉은 남북으로 약 1.9km 정도 길게 뻗은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뻗은 여덟 갈래의 가지능선으로 되어있었다. 안내문에는 원래 모습이
답사팀은 이른 새벽 금관가야 마지막 왕, 구형왕의 릉(경남 합천) 답사를 마치고 아침을 먹었다. 물 맑은 산청의 다슬기와 호박잎, 그리고 청양고추가 들어간 뽀얀 해장국은 겨울 추위 속에 답사를 다녀온 사람들의 몸을 녹이고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답사에서 컨디션을 좌우하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인데 답사팀의 운이 좋았다.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다음 목적지는 경남 함안 아라가야 유적지였다. 함안 아라가야 박물관과 함께 2013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회의에서 가야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답사 이틀째, 경남 산청의 한 펜션에서 하룻밤 머문 천손문화연구회 답사팀은 아침 6시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인 구형왕의 왕릉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답사버스로 10여 분 거리에 구형왕릉이 있었다.12월 한겨울의 아침이라 해가 뜨지 않아 캄캄했고, 눈 대신 겨울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어스름이 조금씩 사라지며, 크고 작은 자연석으로 촘촘히 쌓은 7층 피라미드인 구형왕릉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 높이는 11.15m로, 국내에서는 유일한 적석 피라미드이다.완만한 산 비탈의 경사면을 따라 쌓은 왕릉 하단은 매우 넓고 4단부터는 급격히 좁아
대가야박물관에서 눈에 띄는 전시물은 가야를 대표하는 악기, 가야금이었다. 가야금의 기원은 에 나온다. “가야금은 중국의 쟁(箏)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가야의 가실왕(嘉實王 또는 嘉悉王)이 12개월의 율려(律呂)를 본받아 12현금(絃琴)을 만들고 이에 성열현(省熱懸) 사람인 우륵을 시켜 12곡을 짓게 하였다.”가야금 명인 고 황병기 선생은 “중국 나 위서 동이전에 보면 ‘동이족은 하늘에 제를 지내고 주야로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 ‘한반도 남쪽에 고유한 현악기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며 “중국의 영향보다는
한반도에서 500여 년의 역사를 이룬 ‘가야’. 삼국시대라는 시대구분으로 인해 5백 년이 넘는 가야는 있는 듯 없는 듯 미지의 영역에 머물렀다. 철갑기마무사와 철갑을 두른 말과 같은 군사유물로 대표되는 가야는 오랜 역사 속에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연맹체로 존재했다가 끝내 신라에 복속되었다. 그들은 누구이고, 왜 통일국가로 나가지 못했을까?지난 12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위치한 대가야, 금관가야, 다라가야, 아라가야 고분군과 경남 산청 깊은 골짜기에 7층 적석 피라미드 왕릉을 남긴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릉을 답사했
지난 19일,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2층 워크숍룸에서 제173차 국학원 정기 국민강좌가 열렸다. 이날 강좌에는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교수가 ‘부여와 백제 및 가야와의 연관성 검토’에 관하여 강연했다. 이 교수는 부여에 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사에서 부여가 지닌 역사적 위상은 높다고 주장했다.“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부여의 별종(別種)으로 불려졌다.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한 세력은 부여로부터의 유이민이었다. 이 점은 개로왕이 북위에 올린 상표문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백제 왕실의 성인 부
가야사 복원이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되고, 경남 경북 및 고령 함안 김해시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등 최근 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가야인의 민족적 유래와 하늘에 제를 올렸던 가야 문화의 뿌리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천손문화연구회(주임교수 정경희)는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양일간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가야문화권 일대를 답사했다. ‘부여족의 이동과 가야문화’를 주제로 가야문화권에 남아 있는 선도문화의 원형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된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가야문화권 조사·연구와 정비사업’의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이와 관련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가야문화권은 한국 고대사 규명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에도 신라나 백제에 비해 조사를 비롯한 연구와 유적 정비가 많이 이루어지지 못했다.이에 문화재청은 고고학적 자료가 부족하여 앞으로 조사와 연구의 확대 필요성을 느꼈다. 지난 7월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 가야, 나주연구소 포함)와 함께 내부 임시조직을 운영하면서, 가야사·고고학 분야 등의 간담회, 지자체 관계관회의, 민간 자문위 구성·운영을 통한 다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