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철 법무법인 충정 고문변호사가 제헌절을 맞아 '헌법상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검토한 글을 보내왔다. 곽 변호사는 "우리 헌법은 헌법전문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선언하고 있는데 헌법학계나 법조 실무 상 지금까지 별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며 "어느 국가나 국가의 정체성과 건국이념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국가의 기본을 이루는 매우 중차대한 일이므로 앞으로 헌법학계의 활발한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문을 3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연재 순서]헌법상 대한민국의 건국이념1. 헌법전문과 건국이념2.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의미나. ‘대한’의 의미이상 <1>로 게재.(기사 보기)▲ 곽영철 법무법인 충정 고문변호사 3. ‘인류공영’의 이상헌법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인류공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인류공영'이란 표현은 본래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이자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이다. 우리 교육기본법도 제 2조(교육이념)에서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홍익인간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인류공영’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이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을 제정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념을 이어 받은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4. 제헌절 노랫말에 나타난 건국이념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이라는 사실은 제헌절 노랫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1948년 헌법 제정과 함께 1949년 10월 1일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공포되어 제헌절은 3‧1절, 광복절, 개천절과 함께 4대국경일의 하나로 지정되었고 제헌절 노래도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제헌절 노래의 가사를 보면"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삼백 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옛 길에 새 걸음으로 발 맞추리라 이 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다 대한민국 억만 년의 터"로 되어 있다.가.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의 뜻은 무엇인가?우리의 옛 역사서인 『삼국유사』 고조선편과 『한단고기(桓檀古記)』삼성기(三聖記)에 의하면 배달국 한웅천황이 풍백(바람), 우사(비), 운사(구름)와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신시를 개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위와 같이 환웅천왕이 신시 배달국을 건설할 때에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내려왔다는 기록을 제헌절 노래가사에서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풍백, 우사, 운사는 국가 통치제도의 기본조직으로서 풍백은 입법관, 우사는 행정관, 운사는 사법관을 지칭한다고 한다.나.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여기서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이란 옛 역사서의 기록대로 우리나라 옛 성인, 한인 한웅 단군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하늘 뜻을 펼쳐 사람들의 삶을 돌보셨다는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이란 우리나라의 건국이념 ‘홍익인간’의 시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다. ‘삼백 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 였다’이 부분은 『삼국유사』 고조선편의 기록 중 한웅천황이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신시배달국을 세우고 모든 인간의 삼백육십여사를 주재하였다는 기록 부분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삼국유사』 고조선편에는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삼백육십여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우리 민족의 3대경전 이라 일컬어지는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중 참전계경에 실려있는 366사 즉 삼백예순여섯가지 지침을 의미하는 것이다.한민족에게 전해내려오는 여러 역사서에서 참전계경은 배달국 한웅천왕시대부터 백성들을 다스리고 교화시키는 교과서이자 지침서였음을 밝히고 있는데 참전계경은 삶의 목적인 인간완성을 이루고자함에 지키고 경계해야 할 바를 성(誠), 신(信), 애(愛), 제(濟), 화(禍), 복(福), 보(報), 응(應) 이라는 여덟 가지 강령으로 나누어진 366사(事) 속에 담아 하늘의 가르침을 펴고 있다. '삼백예순 남은 일'이란 바로 이 참전계경의 366사(事)를 말하는 것이다. 참전계경의 366사를 『삼국유사』에서는 360여사로 표현하였고, 다시 제헌절 노랫말에서는 『삼국유사』 의 360여사를 "삼백예순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계속] 글. 곽영철 법무법인 충정 고문변호사
통일 단군신화(檀君神話) 재조명 박정배 시인 단군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보다100년이 앞 선 선대의 사람중국의 조상 황제 헌원을 72번이나 용서한 붉은악마 치우천왕보다340년 후대의 사람중국 태평시대 요임금 시절의 단군그 시대어찌 곰이 사람으로 변할 수 있을까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아직도 곰처럼 미련한 교육을 받고 있다한 번
앞서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단학이 선도수련문화의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일차적인 요인으로 선도 전통을 현대화하였던 점을 들었다. 한국선도 전통에서 바라볼 때 단학이 주목되는 이유는 물론 현대에 등장한 수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 가장 크게 세를 확장하여 한국선도를 대표하는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선도 전
1392년 조선 건국 후, 2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 사회는 뿌리부터 흔들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후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적 각성이 강하게 일어나며 성리학을 중심으로 했던 기존의 사상에 대해 새로이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17세기 후반 숙종 대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의 정통적 역사인식이 강화되며 덩달아 선도
하늘에서 신단수가 내려온다. 환웅은 웅녀의 손을 잡고 결혼식을 올린다.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 ‘신시(神市)-태양의 춤’의 한 장면이다. 극이 전개되는 동안 고조선 문화와 관련이 깊은 홍산문화 유물이 병풍처럼 움직인다. 환웅족과 호족(虎族)의 전쟁은 손에 땀을 쥘 만큼 역동적이다. 말 한마디 나오지 않는 춤극이다. 그
한국선도는 한국사의 출발점에서 시작된 고유의 사유체계로서 수련법에 기반하고 있으며 상고 이래 줄곧 한국사상의 원류로서 기능하여 왔다. 선도는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한국선도를 연구해온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현대의 선도수련문화를 통해 선도 기학이나 선도수련법 등의 현대화 측면을 분석하여, "현대 '선도수련문화'의 확산과 '단학(丹學)'이라는 논문을 작성했다.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광복 이후 서구화 추세 속에서 약화 일로에 있던 선도는 1970년대말·1980년대초에 이르러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서구화에 대한 반성적 분위기 속에서 고유 전통으로서 한국선도가 부각, 많은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고 선도수련문화가 대중화되었는데,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계열로 ‘단학’이 있다. 근대의 선도가 민족종교의 형태를 취하였던 것과 달리 현대 선도는 수련법을 중심으로 하였으니 한국선도의 본령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 정경희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교수단학이 선도수련문화의 대중화를 주도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선도의 상품화, 대중들의 참여, 선도의 현대화 등이 꼽히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일차적 요인은 ‘선도의 현대화’이다. 단학은 선도수련문화의 출발점이 되는 ‘선도 기학’을 현대화하였다. 선도 기학의 현대화라는 성과가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유는 이를 통해 선도수련법이 현대화되었고 또 선도수련법의 현대화를 통해 선도수련문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학은 새로워진 선도 기학에 바탕하여 선도수련법을 현대화하였다. 단학의 많은 수련법들이 고전적 선도수련법을 현대화한 형태이지만, 특히 뇌교육은 뇌가 강조되는 시대변화를 적극 수용한 바, 선도 현대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선도수련법의 현대화는 자연스럽게 선도수련문화의 대중화로 이어지게 되는데, 특히 2000년대 무렵부터 미국사회를 중심으로 선도수련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요약] 1. 머리말‘한국선도’는 한국사의 출발점에서 시작된 고유의 사유체계로서 수련법에 기반하고 있으며 상고 이래 줄곧 한국사상의 원류로서 기능하여 왔다.1) 삼국 이래 중국에서 도입된 삼교(도교·불교·유교)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한국선도는 점차 퇴조, 불교와 습합되는 면모를 보였다. 선·불 사상을 시대이념으로 하였던 고려를 지나 조선에 이르러 선도와 극히 대척적인 유교성리학이 국가이념으로 정착되자 선도는 이단시되었고 민속·무속의 차원으로 저락되었다.2) 구한말의 시기 선도는 동학, 정역, 증산도, 대종교 등 ‘민족종교(민중종교, 신종교)’3)의 방식으로 한국사의 전면에 재등장하였다. 이중에서도 특히 한국선도의 원형을 가장 선명하게 계승,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한 계열은 대종교였다. 대종교는 여타 민족종교들에 비해 선도의 상징적 존재인 삼성(환인‧환웅‧단군)이나 단군에 대한 기준이 선명하였고 강한 민족적 성향과 맞물려 민족주의 역사학을 정립하거나 항일독립운동에 적극 나서는 면모를 보였다.4)일제시기 부흥한 선도는 그 민족주의적 성향을 경계한 일제의 탄압, 그리고 일제를 통해 새롭게 도입되기 시작한 서구사상·문화의 위상이 높아가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차츰 약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선도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사라지면서 일시적으로 선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공인되고 제도화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러나 곧 이은 남북분단 및 냉전 체제 하에서 민족주의적 정서가 금기시되고 서구사상‧종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선도의 위상은 다시 낮아지기 시작하여 급기야 민속‧무속의 차원으로전락하게 되었다.이후 1970년대말·80년대초 무렵이 되면서 한국선도는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이즈음 서구화에 대한 반성적 분위기 속에서 고유 전통으로서 한국선도가 부각, 많은 ‘선도수련단체’가 등장하고 ‘선도수련문화’5)가 대중화되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세계화하는 면모까지 나타났다. 근대초 부흥한 한국선도가 사그러든 이래 가장 큰 약진을 보인 시기였을 뿐아니라 특히 1970년대말까지 한국선도가 민속·무속 정도로 인식되던 상황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세계화 현상까지 나타났기에 주목해 보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많은 선도수련단체들 중에서도 특히 ‘단학’ 계열에 의해 주도되었다.6) 단학을 중심으로 한 현대 선도 연구는 1990년대말·2000년대 즈음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체로 교육학이나 체육학 방면에서 선도수련의 심신치유 효과 검증 관련 연구가 많은 편인데, 이러한 류의 연구 외에 선도수련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는 주로 종교학, 특히 종교사회학 방면에서 이루어져왔다.7) 먼저 선도수련문화의 등장 배경에 대해 1960·70년대 서구의 ‘뉴에이지운동’이나 1970년대 후반 일본의 ‘정신세계운동’ 등 세계적인 추세인 ‘신영성운동’의 영향에다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접합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이래8) 대부분의 연구가 이러한 입장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 하에 ‘영성의 상품화’ 및 ‘종교의 개인화’의 측면에 주목한 연구9)가 나왔고, 이와 달리 서구나 일본의 신영성운동과 차별화되는 민족전통에 기반한 뚜렷한 신념체계‧체계적 조직화‧대규모 사회운동 추구 등의 측면에 주목한 연구도 나왔다10). 이외에도 서구의 사회학 이론을 도입하여 종교적 카리스마의 적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연구11), ‘전통에 대한 일관된 기준없이 현대인들의 욕구에 맞춘 종교의 상품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연구12) 등도 나왔다. 최근에는 2000년대 이후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여 전개된 ‘국학운동’에 주목한 연구가 나오는 등 관심사가 더욱 다양해져 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상의 연구는 한국선도의 역사적 전개 과정이나 사상적 본령에 기반하여 현대 선도를 바라보기보다는 현재의 활동상 분석을 통해 현대 한국사회에서 수련문화가 갖는 종교사회학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선도의 역사성이나 사상성이 현대 선도로 계승된 부분에 대한 문제 의식은 취약한 것이다. 연구자는 한국선도가 상고 이래 한국사의 근간이자 한국문화의 원형으로 기능해왔기에 관련 연구는 시기를 막론하고 역사성 및 사상성에 기반한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바라보는 입장이며, 앞서 이러한 관점으로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단학을 중심으로 현대 선도의 동향을 간략히 살펴본 바 있다.14)이후 1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단학을 위시하여 현대 선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구자 또한 그간 계속된 한국선도 관련 연구로 현대 선도에 대한 보다 깊은 분석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그간의 연구에 기반하여 단학을 중심으로 현대 선도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1970년대말․1980년대초 이후 근대 이래로부터의 ‘종교’ 형태에서 벗어나 선도의 본령인 ‘수련’ 형태로 전환하게 되어 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되 특히 이러한 변화를 추동했던 단학이 선도 기학(氣學)이나 선도수련법 등의 ‘현대화’에 기반하여15) 선도수련문화를 ‘대중화’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화’까지 추구함을 살핀 것이다. 선도수련문화의 대중화나 세계화 양상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의 분석이 가능할 것이나 본고에서는 주로 선도 기학이나 선도수련법 등의 현대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아래 제2장에서는 광복 이후 선도의 쇠퇴 국면을 살펴 볼 것이다. 광복 이후 한국사회의 서구화 추세 속에서 선도의 민족적 성향이 기혐, 선도가 국가제도적인 차원으로 자리매김되지 못하고 무속·민속 등의 애매한 이름속에 갇히게 되었음을 살펴 보겠다. 제3장에서는 1980·90년대 선도수련단체들의 등장을 계기로 선도가 ‘종교’ 형태에서 벗어나 ‘수련’ 형태로 전환되며 특히 단학을 중심으로 선도수련문화가 대중화되었음을 살펴보겠다. 제4장에서는 단학이 선도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 요인이자 이론적 기반으로서 선도수련법의 출발점이 되는 ‘선도 기학’을 현대적인 개념과 논리로 재구성, 현대화하였던 점을 제시하겠다. 제5장에서는 단학이 선도의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일차적인 요인으로 고답적인 선도수련법에 머물지 않고 시대변화를 적극 수용, 선도수련법을 지속적으로 현대화해갔던 점을 제시하겠다. 제6장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선도수련문화가 미국사회를 중심으로 세계로 확산되어가는 양상을 살펴보겠다.1. 한국 고유의 사상 전통은 풍류도, 풍월도, 선도(仙道), 신선도, 종교(倧敎), 신교(神敎), 고신교, 선교, 선가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어 왔는데, ‘선도’, ‘신선도’, ‘종교’, 선교 등의 용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는 단순한 종교나 신앙 전통이 아니라 ‘신선(선(仙)・종(倧)・전(佺))’으로 표상화되는 바 전인적 인격체가 되는 심신 수련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고유 사상이 단순한 종교・신앙이 아니라 수련법에 바탕한 사유 체계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계통의 용어중 ‘선도’라는 용어를 선택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최치원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중국의 도교 전통(세분화하면 도가철학・도교신앙・내단수련법)과 분명히 다른 사상이라고 한다면 ‘한국선도’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정경희, 「한국선도의 수행법과 제천의례」, 『도교문화연구』21, 한국도교문화학회(2004) ; 「중국의 ‘음양오행론’과 한국선도의 ‘삼원오행론’」, 『동서철학연구』49(2008) ; 「한국의 선도수행으로 바라본 중국의 내단 수행」, 『선도문화』13(2012)). 한국선도에 대해서는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시작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성과의 축적이 있었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한국선도가 중국의 도교 전통과 구분되는 고유의 문화・사상·수련 체계를 지닌 것으로 바라본 연구는 아래와 같다.(신채호, 「동국고대선교고(1910)」,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단재신채호전집』 별집(서울: 형설출판사, 1972) ; 이능화, 『조선도교사』, 이종은 옮김 (서울: 보성문화사, 2000) ; 안재홍,『민세 안재홍선집』, 안재홍선집간행위원회(서울: 지식산업사, 1981) ; 김정설,『풍류정신』(경산: 영남대학교출판부, 2009) ; 안호상,『배달 동이겨레의 한 옛 역사; 배달동이는 동아문화의 창조자』(서울: 배달문화연구원, 1971) ; 차주환, 『한국도교사상연구』(서울: 서울대출판부, 1997) ; 송항룡, 「한국고대의 도교사상」 , 『도교와 한국사상』 (서울: 범우사, 1987) ; 최삼룡, 「선인설화로 본 한국고유의 선가에 대한 연구」 , 『도교와 한국사상』 (서울: 범우사, 1987) ; 이을호, 「‘한’사상의 구조적 성격과 역사적 맥락」,『한사상의 이론과 실제』 (서울: 지식산업사, 1990 ) ; 도광순, 「한국사상과 신선사상」, 한국도교학회, 『도교학연구』7(1991) ; 도광순, 「한국도교의 사적 연구」 , 한국도교학회, 『도교학연구』7(1991) ; 윤내현, 『고조선연구』 (서울: 일지사, 1992) ; 윤이흠,「한국민족종교의 역사적 실체」,『한국종교』22(1997), pp.99-100. 2.정경희,「선도의 잠복」,『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 선도문화연구원편(천안: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출판부, 2006).3. 윤이흠은 1860년 동학 이후 우후죽순처럼 일어난 한국자생종교들이 민족의 정체성 확립의 주역으로 역할했고 스스로 ‘민족적’ 종교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민족종교’로 이름할 수 있다고 했다.(윤이흠,『한국종교연구』1 (서울: 집문당, 1986), pp.285-288 ;「한국민족종교의 역사적 실체」,『한국종교』22, pp.88-90, p.120.) 반면 류병덕은 동학 이후 민중층이 형성되고 민중운동이 활발해졌다는 의미에서 민중종교라는 용어를 제시하고 동학·정역·증산교·대종교·원불교를 민중중교의 5대맥으로 보았다.(유병덕,「개화기·일제시의 민족종교사상에 관한 연구 -그 당시 민중종교의 교조 사상에서 찾아본 철학의 제문제」,『철학사상의 제문제3』(서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p.243.) 이외에 국제적인 통례에 따라 ‘신종교’의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노길명은 한국의 신종교가 근대 이후의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띠면서 전개되어왔기에 ‘민중종교’로서의 성격과 ‘민족종교’로서의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고 보았다. (노길명,「한국 신종교운동의 전개 과정」,『한국종교』23(1998), pp.355-356.) 신종교는 흔히 유교, 불교, 도교, 무속 등 전통종교에서 비롯된 종단들과 기독교에서 비롯된 종단들을 포괄한다.(강돈구,「신종교 연구의 길」,『한국종교』23(1998), p.139.)4. 박영석,「대종교의 민족의식과 항일독립운동 상·하」,『한국학보』31·32(1983) ; 서영대,「한말의 단군운동과 대종교」,『한국사연구』114(2001) ; 김동환,「대종교 항일운동의 정신적 배경」,『국학연구』6(2001) ; 정영훈,「대종교와 단군민족주의」,『단군학연구』10(2003).5. 종교사회학 방면에서는 대체로 ‘기수련문화’, ‘기수련단체’(또는 ‘심신수련단체’)로 표현하는데, ‘기수련’의 사상적 배경을 분명히 적시하지 않은 표현법으로 그만큼 이시기 기수련단체들이 다양한 계통의 기수련법이나 명상법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중에서도 한국선도에 명확한 연원을 대고 있는 경우는 ‘선도수련문화’, ‘선도수련단체’로 적시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법이 될 것이다.6. 정경희,「선도의 약진」,『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 선도문화연구원편(천안: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출판부, 2006).7. 가톨릭 신학이나 개신교 신학 방면에서 나온 연구는 한국선도사상이나 민족종교를 부정하는 입장이기에 논외로 하였다.8. 노길명,「신영성운동과 그리스도 신앙」,『사목』268호 (2001. 5. 8.) ; 전명수,「신영성운동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고찰」,『한국사회』5(2004).9. 박상언,「단학선원의 치유의례」,『종교연구』28(2002) ;「탈현대성과 영성의 테크닉; 웰빙의 문화현상에 대한 종교학적 이해」,『종교연구』43(2006)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변동 양상과 성격」,『종교연구』44(2006). 10. 백세곤,『새로운 종교현상으로서의 기수련문화에 관한 연구; 단월드를 중심으로』석사학위논문(한신대 대학원, 2006).11. 김무경,「단학선원; 신화의 회귀와 ‘카리스마의 일상화’」, 서강대 종교연구소,『한국종교연구』2(2000). 12. 우혜란,「기수련 단체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세계화 기획-‘단월드’를 중심으로」,『인문과학연구』11(2006); 「신자유주의와 종교의 상품화」,『종교문화비평』13(2008) ;「한국 명상단체의 세계화 기획과 서구 사회의 대응-‘단월드’와 ‘마음수련’을 중심으로」,『신종교연구』25(2011).13. 강돈구,「한국 종교교단의 ‘국학운동’」,『종교연구』70(2013).14. 정경희,「선도의 약진」,『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15. 정경희,「한국선도의 ‘삼신하느님’」,『도교문화연구』26(2007) ;「삼국시대 선·불 습합의 미륵사상」,『단군학연구』16(2007) ;「정조의 한국선도 인식과 단군의 위상 제고」,『조선시대문화사』하, (서울: 일지사, 2007) ;「한국선도의 ‘삼원오행론’-‘음양오행론’의 포괄」,『동서철학연구』48(2008) ; 「중국의 음양오행론과 한국선도의 삼원오행론」『동서철학연구』49 ;「한국선도와 ‘단군’」,『도교문화연구』31(2009) ;「한국선도의 ‘일·삼·구론’(‘삼원오행론’)에 나타난 존재의 생성·회귀론」,『동서철학연구』53(2009) ;「홍산문화 옥기(玉器)에 나타난 ‘조천(朝天)’사상(2) - ‘2기’·‘5기’·‘9기’형 옥기를 중심으로-」,『백산학보』88(2010) ;「한국선도의 ‘일·삼·구론’(‘삼원오행론’)으로 바라본 일본신도」,『비교민속학』44(2011) ;「홍산문화 옥기에 나타난 ‘조천’사상(1) - ‘1기’·‘3기’형 옥기를 중심으로-」,『선도문화』11(2011) ;「동아시아 ‘천손강림사상’의 원형 연구」,『백산학보』91(2011) ;「동아시아 ‘북두-일월’ 표상의 원형 연구」,『비교민속학』46(2011) ;「한국선도 수행의 실제」,『선도문화』12(2012) ; 「한국의 선도수행으로 바라본 중국도교의 내단 수행」,『선도문화』13 ;「신라 ‘나얼(나을, 나정)’ 제천 유적 연구」,『진단학보』119(2013) ;「신라 ‘나얼(나을, 나정)’ 제천 유적에 나타난 ‘얼(井)’ 사상」,『선도문화』15(2013) ;「5세기 후반 신라의 선도와 ‘나얼(나을, 나정)’ 신궁 건립- ‘밝왕’ 소지왕의 선‧불 정책을 중심으로 -」,『선도문화』16(2014) 등.
서양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한국에는 춘향전(春香傳)이 있다. 지금까지 만화, 연극, 영화 등 많은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판매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의 고전이 아닐 수가 없다.남원 광한루원에는 춘향관과 함께 춘향이가 살던 집을 재현해 놓았
우리나라에는 4대 누각으로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남원 광한루가 있다. 이 가운데 ‘광한루’는 춘향전의 무대로 유명하다.조선시대 황희 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광통루(廣通樓)라고 불렀다. 세조 26년(1444) 정인지가 건물이 전설 속의 달나라 궁전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닮았다 하여 광한루(廣寒樓)로 고쳐
[6]편("클릭" 국학원 전시관에서 한민족이 인류의 장손이라는 증거를 만나다)에 이어...우리 선조들은 중앙아시아의 ‘천산(天山)’에서 발원하여 기나긴 세월 동안 ‘환국(桓國)’을 통치한다. 그리고 홍익의 터전을 찾아 다시 동진한다. 이윽고 백두산 근처에 이르러 ‘신시 배달국(신시를 도읍으로 한 밝은 나라)’을 건설한 여러 환웅천왕은 문자를 사용하여 역
암각화라고 하면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유명하다. 국보로 지정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또 암각화는 경상도에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전북에도 울산과 똑같은 이름의 대곡리 암각화가 있다. 김현식 남원문화원 사무처장의 차로 현장을 다녀왔다. 대곡리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암각화는 연못을 앞에 둔 봉황대를 찾으면 된다. 마을 이름과 봉황은 관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