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에 추위가 와서 우리나라는 지구온난화와 거리가 멀다 싶었더니 그것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매서운 추위가 왔다는 것이다. 청년 실업자가 느는 것도 유럽에 중동 난민이 몰려드는 것도 모두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니 과학기술이 발전했다고 하여 좋아할 일이 아니다. 수제 드론을 만들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요즘 중동에서는
진주는 충절의 땅이다. 1592년 조일전쟁(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시민 장군은 3,8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물리쳤다. 그 유명한 진주대첩이다. 그러나 이듬해 2차 전투에서는 7만 민관군이 10만 왜군에 맞서 싸웠지만 패배했다. 승전을 자축하던 왜군의 자리에서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이가 있었다. 조선의 관기 논개다. 이러한 역사는 교과
인류 종말에 관한 예언은 기독교가 그 본산지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이 상식인데 동서양 모두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시무종(無始無終) 즉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것을 순환론이라 하는데 기독교에서만 역사의 종말을 주장한다. 그런 종말론이 이제는 과학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으니 심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 신문에 연일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나타나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 역사는 무한히 발전한다고 하더니 발전은 커녕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100년 전 우리나라가 망하기 2년 전인데 안국선(安國善)이란 선비가 이란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까마귀, 여우, 개구리, 꿀벌, 계, 파리, 호랑이 그
요즘 검인정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여야가 시끄럽다. 세월호 사건 이후 단 하루도 쉴 날이 없다 할 정도로 시끄러웠으니 이제는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교과서 문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와 나라 안이 또다시 시끄럽다. 우리 역사의 머리인 고조선이 망가지고 없다는 사실부터 챙겨야 할 일을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언성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근
속아서 한평생이란 말이 있다. 누구나 속고도 속은 줄 모르고 한세상을 보낸다. 우리가 속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2000년 고조선의 역사를 잃고도 잃은 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병도에게 배운 강단사학자들에게 물어보아야 그들은 모른다. 차라리 소설가 이광수에게 물어보는 것이 낫다. 이광수는 일제 말기인 1942년에 소설『원효대사』를 썼다.
일제 36년 동안 조선의 정신을 말살한 ‘식민사학’은 청산하지 못했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학술대회가 열린다.(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양원)는 오는 16일 오후 1시 30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 식민사학 극복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는 ‘광복(해방) 70년과 일제잔재
부산은 사찰이 많다. 교회나 성당에 비하면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어느 극단적인 종교인들은 “부산의 사찰이 모두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거꾸로 본인들의 성전이 무너지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지 돌아볼 일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행동으로 옮길 때 참 신자(信者)가 아닐까? 불교, 유교, 천주교,
올해 광복절 70년 경축도 북한의 도발로 무색해졌습니다. 광복이 곧 분단의 역사이고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전역을 연기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군인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군복에 단 태극마크가 어느 때보다 빛나는
1. 임금의 청탁을 거절한 법관 정철송강이라고 하면 가사 관동별곡(關東別曲)을 머리에 떠올리겠지만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의 한 사람이었다. 정철은 중종 31년 서기 153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남부끄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10살 때 아버지가 ‘을사사화(乙巳士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