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역사는 세 가지 잘못된 선입견에 따라 민족사에서 배제되고 있다. 선입견 하나는 고조선 기록이 역사가 아니라 ‘단군신화’라는 것이고, 둘은 민족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라는 것이며, 셋은 근거가 되는 사료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는 전제에서 비롯된 편견인데, 제각기 다른 주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조선 사료가 곧 신화일 뿐이라는
강진 만덕산 기슭엔 백련사가 있고, 백련사는 다산의 기를 북돋아 준 혜장스님이 있었다.다산이 유배 온 지 8년이 지난 후 혜장스님을 만나게 됐다. 스님은 다산을 율동 마을 뒷산으로 안내해 두 사람의 인연은 깊어졌다. 다산과 혜장은 자주 만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하며 지냈다.다산이 산속 초당으로 옮겨온 뒤 많은 저서를 집필케 된 것이다.동암옆의 천일각에서는
치우천왕은 하삭河朔(현 하북성 북쪽 일대)에 웅거하여 파병 준비를 하였다. 81명의 장수를 가려 뽑아 연맹군을 만들었다. 전력 향상을 위해서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청동 및 철제무기를 제작하기로 하고 갈로산葛盧山에서 쇠(金)를 캐내어 검劍, 개鎧, 모矛, 극戟, 대궁大弓 등을 제작하였다.배달연맹군은 색도索度(하북성 북쪽)로부터 진군하여 먼저 탁록涿
배달국말이 되면 염제 신농국과 백제 소호국의 세력 균형이 깨어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유망楡罔(신농국의 8세)이 백성들을 단속하고 다그쳐 민심이 돌아서고 제후들이 배반하여 중원지역이 극히 시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신농국이 패권주의적 지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인데, 이러한 혼란을 틈타 신농국의 유력가였던 공손公孫 헌원軒轅(후의 황제黃帝, 기원전 2550년~기
신농국이 성세를 누리자 배달국의 제10세 갈고葛古 환웅은 신농국을 제후로 봉하고, 공상空桑[궁상窮桑, 하남성 진류陳留(회양)] 일대를 경계로 하여 동쪽을 배달국의 영토로, 서쪽을 신농국의 영토로 하였다.이로써 신농국에게는 배달국의 ‘삼신오제론三神五帝論’에 입각하여 ‘염제炎帝’의 칭호가 부여되었다. ‘삼신오제론’은 한국선도의 ‘삼원오행론’의 다른 이름이다.
부천 만화박물관을 찾은 것은 ‘지지 않는 꽃 - 앙코르 전’을 보기 위해서다. 전시작품은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린 국제 만화축제(1월 30일-2월 2일)에서 선보인 우리작가들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다.모두 24점, 100컷이나 되는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참상을 만화로 풀어낸 한(恨) 많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차분히 가라앉아있는 전시장 관람객들은 말을 잊었
다산 정약용(1762.6.16∼1836.2.22)은 경기도 남양주 조안면에서 태어났지만, 전남 강진에서 많은 세월을 고생하며 보낸 위대한 실학자요, 시인이었다.지난 2월 22일은 다산이 숨을 거두신 날이다.우리가 다산하면 떠오르는 ‘목민심서’는 이곳 사의재라고 하는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로 불리던 주막집 사의재(四宜齊)에서 집필이 된 것이다.1801
선도사서『환단고기』의 편년에 따르면 배달국의 개창 시기는 기원전 3,898년으로 후기 신석기시대에 해당한다. 윤내현은 후기신석기 단계의 한국사회는 ‘고을나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여러 마을이 연맹을 맺어 고을을 이루고 정치적 지배자가 출현한 단계라는 것이다. 특히나 배달국의 영역에 속하였던 요서지역 홍산문화 후기의 유적(기원전 3,500년~기원전 3,
주지하듯이 근대 이후 고고학의 발전과 함께 동아시아 상고사의 기원이 점차 올라가기 시작하여 현재에는 동북아시아의 요서 지역이 주목되고 있다.요서지역의 신석기문화로는 소하서문화(B.C. 7200년~B.C. 6500년, 오한기 일대), 흥륭와문화(B.C. 6200년~B.C. 5200년, 대릉하 지류 망우하 상류 일대), 사해문화(B.C. 5600년경, 부신 일
앞서 한국선도에서는 사람을 물질인 몸 중심으로 바라보지 않고 내면의 생명력인 마고(천부) 중심으로 바라보기에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역사를 바라볼 때도 사람 내면의 ‘생명력의 발휘 여부’를 기준으로 함을 살펴보았다.『징심록』「부도지」에서는 이러한 역사인식에 따라 한민족사의 출발점에 자리한 마고성시대를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마고성시대